[파이낸셜뉴스] 실손의료보험 적자가 지난해 2조원에 육박했다. 비급여 보험금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의 손익이 1조9738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적자액은 전년 1조5301억원보다 4437억원이나 늘었다. 지난해 8조126억원이 비급여로 지불된 게 영향을 미쳤다. 비급여 보험금은 국민건강보험에 급여를 청구할 수 없는 진료·처치들이다. 무릎연골주사와 같은 비급여 주사, 도수치료, 체외충격파·증식치료 등 수백가지는 넘는다.
실손보험은 3500만명 이상의 국민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린다. 지난해 기준 실손보험 계약은 3579만건에 이른다. 보험료만 한해 14조4000억원을 넘는다. 전년 대비 1조2500억원(9.5%)이나 늘었다.
실손보험이 만성적자에 빠진 것은 '도덕적 해이' 탓이다. 소수 가입자의 과잉 진료 행태에다 병원들의 비급여 진료·처치 유도, 끼워팔기식 거짓 청구 등 온갖 부정행위가 만연하고 있어서다. 알려진 행태들은 '보험사기'를 뺨칠 정도다. 미용 목적의 백옥·태반주사를 치료 주사제로 속여 청구하는 일이나 실손의료보험 한도에 맞춰 수십회씩 미리 끊는 '쪼개기 결제'가 성행하고 있다. 자기공명영상(MRI)과 같은 고액 처치를 위한 '쪼개기 입원'도 있고 병원에서 파는 고가의 보습크림을 비대면 진료로 처방받아 편법 청구하기도 하며 미용시술을 비급여 주사제로 허위 청구하는 사례도 있다.
부정 수급이 횡행하고 있으나 감독당국의 관리 감독은 허술하다. 고의로 숨기고 거짓 청구해도 검증과 확인이 어려워 병원과 환자가 사실상 '짬짜미' 불법 행위는 더 활개를 치고 있다. 고가의 장비를 갖춘 개업의와 2차 병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보험사들도 애초에 자기 부담률이 없도록 설계한 상품을 대거 팔았다. 의사들이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를 외면하고 정형외과·피부과·안과 등 비급여 청구에 유리한,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진료과에 몰리는 것도 허술한 실손보험 비급여 청구제도 탓이다. 이런 폐단이 쌓여 지금의 의료시스템 왜곡을 가져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전체 의료이용의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60% 가까이를 수령하는 기형적인 의료 현실이다.
결국 피해자는 선의의 가입자들이다. 실손보험금을 매월 납입하고도 병원에 몇 차례 가지 않거나 보험금을 청구한 적 없는 가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매년 오른 실손보험료를 해지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내고 있다. 실손보험이 필요한 고령자, 유병자들은 가입조차 어렵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의 폐단을 개혁하겠다며 내년 초까지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대통령실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도 실손보험 제도 개편을 핵심 안건으로 잡았다.
이번엔 실손보험 개혁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비급여 진료시 의사소견과 사전 승인을 받는 독일과 가입자의 자기부담을 높여 과잉진료를 차단하는 미국, 급여-비급여 혼합진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일본 등의 해외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 합리적인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비급여 진료비 청구 의무제' '실손보험 3자 계약제(가입자-보험사-병의원)'도 전향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의료수가 조정 등과 같이 의사집단의 이익을 과도하게 반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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