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지난주 대폭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투자자들의 회사채 수요가 높은 가운데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연내 금리 인하에 나서도 인하 폭이 가파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 기업들이 늦기 전에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 수요를 충족하기로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회사채 발행 봇물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LSEG 데이터를 토대로 높은 수익률의 정크본드 발행이 지난주 20여 건을 넘겨 총액이 140억달러(약 19조2000억원)를 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21년 후반 이후 약 3년 만에 최대 규모다.
투자 등급 회사채 발행도 봇물을 이뤘다.
투자 등급 회사채는 투기 등급 정크본드와 달리 언제든 시장에서 발행이 가능하지만 지난주 대규모로 발행됐다.
지난 1주일 동안 발행된 투자 등급 회사채는 45건에 567억달러(약 77조8000억원)에 이르렀다.
주간 발행 규모로는 2월 후반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발행 건수로는 2년 반 만에 최대였다.
금리 안정, 대선 불확실성에 자극받아
시장 관계자들은 미 금리가 올해 가파르게 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증하는 확신이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붐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수익률이 더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장 상황이 더 나아지기를 기다려 회사채 발행을 늦출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특히 반년 뒤인 오는 11월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로 시장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불확실해 당분간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지금이 채권 발행 적기라는 판단을 기업들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적어도 더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도 회사채 발행 속도를 높인 배경이다.
파월 의장은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다음 행보는 금리 인상보다는 금리 인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못 박은 바 있다.
15일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어떤 양상을 보일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3일 공개된 미국의 4월 고용동향에서 미 노동시장 활황세가 진정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도 금리가 오르기보다는 내릴 것이란 전망을 강화시켰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지금이 정점이라면 더 오를 것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채권 매수에 나서는 것이 낫다.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면 가격은 오른다.
대형 기관 투자가들이 증시 상승세가 주춤하자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채권 투자를 확대했고, 수요가 늘자 기업들이 앞다퉈 회사채를 발행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증권 투자등급 신디케이트 부문 책임자 댄 미드는 지난주, 특히 첫 사흘간 투자 등급 회사채 시장이 이례적으로 들썩였다고 말했다.
미드는 기업들이 지금의 고금리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마침내 수용하는, 이른바 커피출레이션(capitulation·항복)에 이르면서 회사채를 대거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산 금리, 20년 만에 최저
미 국채 수익률 대비 가산 금리가 약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도 회사채 발행이 급격히 증가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ICE데이터서비스가 제공하는 ICE BofA의 고수익률 정크본드 지수에 따르면 지난 6일 미 정크본드 평균 수익률과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 간 수익률 격차인 가산 금리, 스프레드는 2007년 이후 17년 만에 최저 수준인 3.03%p까지 좁혀졌다.
다만 이후 회사채 발행이 늘면서 스프레드는 다시 확대됐다.
또 투자 등급 회사채와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 간 격차는 0.88%p까지 좁혀져 2021년 후반 이후 약 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05년 이후 약 20년 만의 최저 수준에도 바싹 다가섰다.
한편 해리스 어소시에이츠의 고정수익(채권)부문 책임자 애덤 압바스는 스프레드가 좁혀지고 있다는, 즉 가산 금리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연준이 미 경제 펀더멘털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인플레이션을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시장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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