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남매 중 막내였던 추자양은 실종 당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태안군 남면 신온리 큰오빠집에 수개월째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 가족 분위기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무척이나 어수선했다고 한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1986년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큰오빠는 "설 명절이 됐고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모였는데 추자가 가족들이 많이 모여 복잡하다고 느낀 것인지 잠시 집을 나가는 것 같았다"며 "마지막인지 몰랐지만 집 옆 골목길을 걸어가는 추자의 뒷모습도 봤다"고 전했다.
골목길을 걸어갔던 추자양은 실종이 됐다. 사실 가족들은 추자양의 실종 이후 곧바로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며칠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과거에도 있어서다. 추자양이 가족을 떠나야 할 정도로 가족 간 불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추자양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큰오빠는 "돌아오겠거니 생각해 다 같이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추자를 봤다는 제보도 하나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아쉬운 일이 있다면 실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면파출소에서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무연고 사망자를 매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파출소를 찾지 않은 점"이라며 "전화로 문의했을 때 경찰이 50대 여성이라고 했다. 추자가 당시 18살이니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해 찾아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찾을 기회를 놓친 상태에서 시간만 흘러가다가 추자양 실종의 마지막 뒷모습을 기억하는 큰오빠가 책임감을 가지고 나섰다. 늦었지만 실종 당시 하지 못했던 추자양의 실종신고와 유전자 등록을 하고 실종자 모임에도 참석한 것이 큰오빠 나이 일흔을 넘긴 2020년께였다.
다만 실종신고 이후 큰오빠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고 한다. 큰오빠는 "경찰이 말하길 '편추자'라는 이름으로 된 은행거래 실적 등 금융기록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며 "그렇다고 추자가 죽었다고 생각해 사망 신고를 할 수도 없어 답답하고 서글프다"고 토로했다.
큰오빠는 추자양이 살아 있다면 손위 언니와의 함께 한 기억이 많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손위 언니는 간호학교를 나와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중 편찮으신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퇴사를 하고 고향 집으로 들어와 지냈다고 한다. 어머니 병간호를 하던 손위 언니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추자씨는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다. 손위 언니 역시 추자양에 대한 기억이 많다고 한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큰 오빠는 "바람이 있다면 어디에 있든 밥 잘 먹고 몸 건강하게 살아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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