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스토킹·가정폭력이 아니라서… 방치된 교제폭력 피해자들

노유정 기자,

강명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14 18:10

수정 2024.05.14 18:14

동거관계 땐 사실혼 간주해 송치
경찰 선의로 '가폭' 적용되면 다행
대부분 폭행·협박죄로 처벌 경미
사귀던 사람이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 당하는 '교제 폭력'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피해자 보호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인들 끼리의 폭행 사건은 살해 사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도 현행법은 형법상 폭행죄나 협박죄 등으로만 협박이 가능한 상황이다.

■ 경찰, 동거관계 있으면 '사실혼' 간주해 송치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일선 경찰서에서는 교제 폭력 사건을 접수했을 때 친밀도가 높을 경우 되도록 '사실혼'으로 간주해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한 남성이 서울 금천구의 주차장에서 연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 후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데이트폭력 사건에 대해 사실혼으로 의율해서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교제폭력 사건의 당사자들이 동거를 하는 등 깊은 관계라면 '사실혼' 상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의 부부관계임을 밝혀 일반 형법이 아닌 가정폭력처벌법이 적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경찰 관계자는 "각 서마다 연인 간 교제 폭력 사건을 사실혼 관계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고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한 사건이 하나씩 있을 것"이라며 "교제하면서 동거하는 경우가 많을 경우 최대한 사실혼으로 보고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적용할 법이 없다고 그냥 뒀다가 관리대상인 피해자가 더 큰 화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면서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해서 송치를 하지만 검찰이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

스토킹처벌법이 있지만 가해자가 지속해서 쫓아다니며 폭행하지 않는다면 교제 폭력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교제폭력은 일반적인 형법상 폭행, 협박죄 등으로 다루어져 경미한 처벌에 그치고 있다. 피해자가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는 경우 수사기관이 개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별도로 규율하는 법률이 없어 피해자에게 필요한 지원과 보호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 법안 논의 '흐지부지'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교제 폭력 행위도 가정폭력법 처벌 대상으로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논의돼왔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데이트폭력 등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국민의힘 윤영석 의원)',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등 두 건이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두개 안 모두 가해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피해자 보호 방안이 포함돼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현재 국회에 교제폭력 범죄에 가해자 접근금지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지만 '교제 관계'를 정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년째 계류 중"이라며 "이러한 입법 공백으로 최근 교제폭력이 급증하고 피해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외에서는 교제 폭력과 관련된 법이 만들어지는 추세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13년부터 연인 관계에서의 폭력도 가정폭력과 같은 법률을 적용하고 있다.


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 대부분의 교제 폭력 사건의 경우 법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 영국 등 주요국 대부분이 교제 관계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관련 법을 적용하는 만큼 국회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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