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작가, 무늬와 공간서 누드 드로잉展
작품선정 과정서 '왜 여자만 벗기는가' 질문
'여체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 이젠 바뀌어
작품선정 과정서 '왜 여자만 벗기는가' 질문
'여체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 이젠 바뀌어
"누드 드로잉은 인간에 관해 얘기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작업입니다."(이경희 작가)
누드 드로잉 작품의 진가를 선보이는 '누미씨 어디 다녀왔어요?' 전시가 오는 23일부터 내달 5일까지 서울 서초구 갤러리 '무늬와 공간'에서 열린다.
미술계에서 '누미(Numi)'라는 예명으로도 알려진 이경희 작가는 이번 전시 제목으로 '누미씨 어디 다녀왔어요?'라는 말을 선정했다. 이 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이 온통 전범 찾기에 바쁠 때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이 던진 질문인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Wo warst du Adam?)"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작가는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라는 말은 전쟁의 간접 협력자들과 방관자들에게 던진 존재론적 질문을 연상하게 했다"면서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몸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상업적으로 왜곡 포장되거나 종교, 정치 등 힘의 논리에 굴복 이용된 것이 아닌, 몸 자체를 증언하는 자리다. 출품작은 남자 2점, 여자 23점 등 총 25점의 누드 드로잉이다.
출품작 가운데 메인 대표작은 단연 'NO. 1 남자 누드'다. 이 작품은 흑인 남자가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지만 눈을 감고 있다. 이 모습은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딘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스스로 존재에 대한 회의를 잠재울 확신을 검증하는 모양새다.
이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선정 과정에 있어 '왜 여자만 벗겨 놓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며 "반세기 전까지는 '여체가 훨씬 아름답지 않냐'는 질문에 수긍했지만 이제는 달라졌고, 경험에 따라 인간 의식이 바뀌고 몸도 마음도 변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대표작인 'NO. 22 뒤태'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작품은 평면에 그은 선 만으로 여체 누드의 독특하고 섬세한 입체감이 드러난다. 아울러 기계로 그린 선이 아닌, 직접 손으로 그렸기에 선의 소통 언어를 강렬히 표현했다. 무한한 선의 소통 언어를 이해하고 체험하고 표현하다 보면 새로운 선의 세상이 열린다고 이 작가는 설명했다.
이밖에 '한 발 안그린'은 머리를 숙이고 팔에 얼굴을 조금 숙이고 있는 포즈지만 다리 한쪽이 희한하게 없다. 1분 30초 주어진 시간이 '타임 아웃'돼 한 발이 안 그려진 채 끝났다고 회상한 그는 "우리 삶의 모습처럼 미완임을 명백히 보여준다"며 "못 다한 일을 남겨두고 떠나는 삶도 이 작품의 모습과 닮은 듯하다"고 했다.
이 작가는 "누드 작품은 시공을 넘어 실존적 현상으로서 몸을 증언한다"며 "이번 작품들을 통해 '고유성'을 보여주고, 근원이 되는 몸과 실상으로의 몸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경희 작가는 1949년 경북 경주 출생으로 경북여고, 서울대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유학했다. 이후 1971~74년 고려중에서 미술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현재도 서울대 학생회관 외벽에는 그의 작품인 '음악을 위하여'가 새겨져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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