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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상도,벌도 ‘공정’이 중요하다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19 19:45

수정 2024.05.19 19:45

윤경현 증권부장
윤경현 증권부장
'공이 있는 이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이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면 된다.'

법가의 사상을 담은 책 '한비자'에 나오는 문구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보상도, 처벌도 '공정'하고 '엄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최근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이 투자자가 입은 손실액의 30~65%를 배상하라는 금융당국의 결정이 나왔다.
시중은행들의 올해 1·4분기 H지수 손실 배상액은 1조665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ELS는 지난 2003년 처음 국내에 소개됐고, 20년 이상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해마다 30조~40조원어치가 발행됐고, 2019년에는 76조원에 이르렀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저금리 상황과 맞물려 중위험·중수익의 대표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ELS는 2021년 H지수가 고점에 가까웠을 때 발행된 물량이다. 만기(3년)가 돌아오면서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이 발생했다. 보통 ELS는 만기에 기초자산 가격이 최초 기준가의 60~70% 이상일 경우 약속한 금리를 받고 상환된다. 하지만 H지수는 2021년 2월 1만2000대를 찍었으나 올해 1월에는 5000대까지 떨어졌다.

2021년 홍콩 H지수가 고점 부근일 때 들어간 고객들은 손실 상태이지만 수개월이 지난 뒤 낮은 지수대에서 같은 상품에 들어간 고객은 수익을 내는 구간이다. ELS가 매월 2조~3조원어치가 발행된 점을 감안하면 수익을 본 투자자도 상당하다는 뜻이다. 그사이 판매 프로세스가 바뀌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실은 보상하되, 이익은 상관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금융당국의 검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 증권사의 랩·신탁 제재도 이와 비슷하다. 단기자금 운용 시장에서 채권형 랩·신탁은 기업어음(CP) 장·단기 미스매칭 운용으로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제공하며 급성장했다.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장기 자산들이 증권사의 매입 확약 등 신용보강을 통해 단기 자산인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으로 리파이낸싱되고, 채권형 랩·신탁 운용자산으로 쓰이면서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 엄청난 유동성을 부여했다. 지난 2022년 기준으로 시장 규모가 100조원을 넘었다.

그러다 2022년 말 레고랜드발 금리급등 및 신용경색으로 유동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시장이 혼란을 겪으면서 문제가 터졌다. 채권형 랩신탁은 급증하는 고객의 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자산 매각을 추진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심각한 유동성 부족으로 금융당국은 10차례 이상 여러 안정화대책을 쏟아냈다. 랩신탁을 운용하는 증권사는 투자자 보호 및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회사 고유자금을 활용해 고가 매수 운용으로 환매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시장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자산들도 정상가격으로 회귀하면서 투자자, 증권사, 발행사 모두 안정을 되찾았다. 누구도 손실을 본 사람은 없다.

감독당국은 레고랜드발 사태를 겪고 난 지난해 증권사의 랩·신탁 검사에 들어갔고, 관련 제재 발표를 앞두고 있다. 시장에서는 기관경고, 임직원 정직 등 강도 높은 제재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2016년 모증권사가 랩신탁에서 4년 이상 장기 불법성 자전거래로 업무정지(1개월) 및 과태료 징계를 받은 것과 비교해도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온다. 투자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당시에는 불가피했던 조치들로 인해 엄중한 제재를 받는 상황이 돼버렸다.


ELS 사태도, 랩·신탁 문제도 모두 시장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인 '테일 리스크(tail risk)' 측면도 있다. 신상필벌은 당연한 얘기지만 상이든 벌이든 동일한 기준,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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