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당황시킬 만큼 빠른 AI기술과 생태계를 관통할 국제규범으로 △안전 △포용 △혁신이 채택됐다.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공동으로 주재한 '서울 AI정상회'에서 'AI서울선언문'에서다. '서울 AI정상회의'는 지난해 말 영국에서 열린 AI안전성 정상회의의 후속 회의다. 지난해 회의에서는 가짜뉴스나 인간 창작물의 무단 도용, 생채기술의 무단 활용 같은 AI기술 발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한 AI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주재한 두번째 회의에서 AI생태계 국제규범에 안전성 외에 포용과 혁신을 포함해 서울선언문을 성사시켰다. 서울선언문은 그야말로 글로벌 AI산업의 큰 획을 그을 의미있는 발전이 아닐까 싶다.
사실 '안전한 AI'라는 말이 얼핏 보기에는 점잖고 당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창과 방패의 치열한 전쟁이 숨어있다. 점단 신기술 산업이 주로 그렇듯 글로벌 AI 생태계는 ‘매그니피센트7(M7)’라고 불리는 미국의 7개 빅테크 기업이 주도한다. 구글, 애플,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MS)다. 이들 7개 기업이 매일 신규 서비스를 쏟아내며 전세계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진격의 미국기업들이다. 반면에 과거 구글과 애플의 시장 장악을 경험했던 EU는 더이상 미국 기업들에게 시장을 얌전히 내주지는 않겠다는 태세다. EU는 2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계 최초의 강력한 AI규제법을 최종 승인했다. 자체적으로 빅테크 기업을 키우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EU는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AI산업 부터는 '깐깐한 소비자'가 되기로 한 모양새다. 미국 기업의 서비스를 써주는 대신, 유럽 시장에서 장사하려면 유럽의 요구사항을 맞추라고 것이다. AI에 대한 안전성·투명성 요구는 유럽의 깐깐한 소비자 주의가 내포된 말이다. 거대한 창을 가진 미국과 거대한 방패를 가진 유럽은 그렇다치고, 작은 창과 작은 방패를 동시에 써야 하는 한국은 참 난처한 처지다. M7만큼은 크지는 않지만 토종 IT기업을 키워 해외 시장에 내보내자니,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야 하는 셈이다.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안전성 중심이던 AI 국제규범을 포용과 혁신으로 확장해 M7외에 다른 기업들이 시장에 끼어들 틈새를 열어줬으니 AI 서울선언문의 성과는 박수받아 마땅해 보인다.
이제 구체화의 숙제가 남았다. 서울선언문을 한국 IT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M7기업이 밝히는 AI 투자계획이 1520조원 정도다. 지난해 한국 500대 기업 중 R&D 비용을 공시한 224개 기업의 투자총액이 73조원이었으니, 어림잡아 한국기업 전체 R&D의 21배다. 기업의 돈싸움으로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AI시장에 낄 여력이 없다. 정부가 직접 나서면 국제사회에서 미운털이 박힐테다. 정부가 포용성·혁신성을 중심으로 글로벌 AI시장에 한국기업이 끼어들 틈을 만들어주고 힘쓰도록 보이지 않게 지원할 정책을 세심히 만들어야 한다. 'AI 서울선언문'처럼 박수받을 후속정책을 기대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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