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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응답성과 공감성의 정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23 18:25

수정 2024.05.23 18:31

문병준 경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문병준 경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경제의 서비스화, 즉 생산·소비·고용 등 국민경제에서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이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제조기업이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설탕과 밀가루를 제조하던 기업인 제일제당이 생활문화기업으로 재포지셔닝하면서 기업명을 CJ로 변경하고 CJ 제일제당, CJ 푸드빌, CJ 프레쉬웨이, CJ 로지스틱스, CJ 올리브영, CJ 올리브네트웍스, CJ ENM, CJ CGV, TVING 등 식품 및 식품서비스, 생명공학, 물류 및 유통,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변모했다. 대표적인 컴퓨터 제조기업이었던 IBM도 서비스,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기업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제조기업이 점차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하게 된 주된 이유는 경제가 성숙·발전하면서 서비스산업 수요가 증가하는 데다 경쟁력 확보를 위한 차별화의 가능성이 제품보다 서비스 분야에서 더 높기 때문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중앙·지방정부, 공공서비스기관, 비영리기관 등의 경영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공공부문도 서비스 마인드를 가지고 소비자 중심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하버드대의 레빗 교수는 "서비스 산업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다른 산업보다 서비스 요소가 얼마나 더 크냐 혹은 작으냐만 있을 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서비스기업의 성패는 서비스 품질에 달려 있어 품질을 구성하는 차원을 면밀히 파악하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영학, 특히 마케팅 분야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아온 서비스 품질 모델은 5개의 차원으로 구성된 서브퀄(SERVQUAL) 모형이다. 즉 서비스 품질이 신뢰성, 응답성, 공감성, 확신성, 유형성의 5가지 차원으로 결정된다는 모델이다. '신뢰성'은 믿을 수 있고 정확한 임무수행을 하는가, '응답성'은 반응이 즉각적이고 자발적인가, '공감성'은 접근이 용이하고 의사소통이 원활한가와 고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확신성'은 능력·공손함·믿음직함·안전성 등, '유형성'은 물적 요소의 외형에 관한 차원이다.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정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정부·여당이 국민에게 제공하는 국정 서비스의 품질을 면밀히 파악하고 측정하며 개선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국민의 만족도를 높일 수 없고 지지를 받지 못하며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부신뢰구조에 관한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정부신뢰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조건으로 정부역량과 사회갈등을 들 수 있고, 양자 간의 상호작용이 정부신뢰를 규정하며, 상호작용 과정에서 사회 각 부문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고, 정책의 효율성이 정부신뢰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품질에 관한 한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품질을 제고하기 위해 정치권의 민주적 책임성과 반응성 강화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정치가 신뢰성과 확신성을 주기 위해서는 정치안정이 필수적인데,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대통령제의 근본적 문제점으로 통치력 약화와 책임성 부재가 지적되고 있다.
즉 집권 정당이 국회 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함으로써 야당의 공격과 반대에 취약하게 된 정치구조를 갖게 된 점이다. 더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통치가 가능하면서 민주적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통치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한국 정치의 품질 제고를 위해서는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야당과 시민사회 및 언론의 공정성·반응성·효율성, 국가 미래를 위한 타협과 협력이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문병준 경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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