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실패를 즐거워하거나 바라는 심리에 관한 연구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됐었다. 이 현상은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불린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미나 시카라가 다양한 참가자를 상대로 시험해 본 결과 자신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부정적 상황에 빠졌을 때 대체로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실험은 사업가, 학생, 노숙자 등등 다양한 사람을 망라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인간의 본성쯤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 걸 쉽게 볼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정치판'인데, 여당일 때 찬성했던 일을 야당이 돼서 반대한다든지, 여당일 때 반대했던 일을 야당이 돼서는 찬성하고 나선다든지 하는 경우다. 물론 정책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뀌어서 과거의 입장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냥 '나도 못했으니 너도 못해라' 식의 감정이 섞인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정치는 이념적인 행동이지만, 그 결과는 국민의 삶과 굉장히 밀접하게 닿는다. 미국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나 오바마케어, 핀란드의 무상교육, 스웨덴의 복지정책 등은 당시에 모두 정치적 찬반이 극심하게 대립한 문제였지만 정책적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는 많은 국민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꿨던 사례들이다.
따라서 정치에 감정이 섞여 들면 안 된다고 했을 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인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딱 두 개의 정당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구도 때문일 것이다. 상대가 실패하면 내가 이긴다는, 참으로 게으르고 안일한 정치가 제법 오랫동안 진행됐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회의가 오는 28일 열린다. 국민 대부분은 별 관심 없는 드잡이질로 임기의 대부분을 보낸 21대 국회가 진짜 처리해야 하는 법안들을 이들이 처리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중요하지 않은 법안이 어디 있겠냐만 고준위방폐물특별법(고준위특별법)은 정말 심각하다. 여야가 사실상 큰 차이 없이 합의해 놓은 상태에서도 사실은 정치적 입장 때문에 막판까지 밀려온 사안이기 때문이다.
여야가 대부분 합의한 고준위특별법 통과가 어려운 것은 이것이 결국 원전 이념논쟁이기 때문이다. 여당과 정부가 내놓은 특별법에는 저장시설 용량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야당이 반대하는 것은 이 대목이다. 여당 안이 사실상 사용기간이 지난 원전의 운전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어서다. 야당은 이를 자신들의 정책 성과인 탈원전을 무력화하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고준위특별법의 핵심은 사용한 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하자는 것이다. 방폐장 부지 선정 절차가 핵심이지 원전 수명연장이 골자가 아니다. 이 논쟁이 정치적 감정싸움으로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다. 결국 너도 못해야 한다는 일종의 '샤덴프로이데'가 아니겠냐는 얘기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은 1983년 이후 모두 9차례 논의됐다. 이제 6년 뒤면 임시저장 공간이 가득 찬다.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도 빠듯하다.
지금처럼 마냥 시간이 흘러간다고 가정했을 때 6년 뒤에도 우리가 고준위방폐장을 가지지 못한 상태라면 원전 몇 개는 운영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지금 태어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쯤, 전기가 부족해 순환단전을 하는 나라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정치는 미래세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지금의 선택이 그들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1대 국회가 마지막에는 적어도 할 일은 했다는 평을 얻을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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