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는 휴머노이드가 바라본 마지막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AI의 신기술들이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이 그리고 스마트폰이 인류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처럼 AI도 근미래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예측이 매일 뉴스에 올라오고 있다. 이제 AI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태도로 바라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예술단의 신작 <천개의 파랑>은 경마를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천 개의 단어와 인간보다도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로봇 콜리와 무리한 경주로 인해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말 콜리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세 모녀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모두 어딘가 부족한 존재들이다. 고장난 로봇 콜리, 달릴 수 없는 말 투데이, 재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엄마 보경, 하반신이 마비된 첫째 은혜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둘째 연재. 이들은 더 이상 경주를 뛸 수 없어서 안락사만 남은 투데이를 위해 마지막 경주를 준비한다.
<천 개의 파랑>의 휴머노이드 콜리는 사람 대신에 경마에서 기수를 하는 로봇이다. 제조과정에서 우연히 언어를 배우게 되었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로봇이다. 경기 중 스스로 줄을 놓아 낙상하여 부셔졌지만, 연재가 고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공연에서의 AI 로봇들은 영화처럼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모습보다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들이 많다. 이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다운 선택을 하는 AI 로봇을 통해 인간다움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콜리는 마지막 경주에서 힘들어하는 투데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로봇과 인간의 공존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동물, 로봇, 아이들 등 감동의 소재들을 포진해 놓은 이 공연을 객석을 울음바다로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런 설정들은 억지스런 신파가 아니라 질주를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메시지들이 함께 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설을 뮤지컬로 만드는 난이도 높은 작업을 하면서 방백을 사용하지 않고 장면으로 구성한 작가의 기술이 뛰어나다. 죽은 아빠를 인물로 등장시켜 감동을 더하면서도 엄마의 컨피던트(대화의 상대역)의 역할을 하게 만든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LED를 활용한 무대의 구성도 이 작품에 반드시 필요했던 재현적 요소를 강화했다. 로봇의 경우 인형으로 구현하여 말과 함께 인형조종자를 노출하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실제 다르파, 맹인안내로봇 등의 동물형 로봇과 안내로봇 청소로봇 등을 적절하게 등장시켜 로봇의 존재에 대해 관객들에게 스마트하게 인식시켜주었다. 연출적으로도 인상적인 장면은 콜리가 하체를 결합한 후에 인형은 퇴장하고 그 이후부터는 배우가 연기하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로봇의 존재는 인식시키고, 연기적 불편함을 제거하는 스마트한 선택들이 눈에 띄었다.
창작뮤지컬에 있어서 한국적 소재를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소설, 웹툰, 영화 등의 한국 콘텐츠를 활용한 작품개발이라는 측면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국립단체인 서울예술단이 오랜만에 완성도 높은 한국 콘텐츠의 뮤지컬을 제작한 것에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대극장 규모에 새로운 이야기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데 이는 국공립단체가 아니면 시도하기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예술단의 무용수들이 안무를 통해 구현한 몇몇 장면들은 일반 뮤지컬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서울예술단의 장점을 잘 살리고 국립단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발전에는 과감한 투자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공립단체의 역할은 예술의 변화와 발전에 있어서 작품을 통해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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