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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춘야희우는 여름에 알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27 18:09

수정 2024.05.27 18:59

春夜喜雨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27일 폐막했다. 3국은 200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지난 25년간 협력 기제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이제야 9차 회의이며, 8차에 이어 4년 반 만에야 열렸다. 3국 정상회의는 역사와 여타 현안들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3국 관계 발전의 결정적 동력은 아니나 역내 안정과 협력을 위한 실용적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왔다는 점에서 인정할 만하다. 3국 정상회의는 한일중 3국 협력의 펀더멘털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모멘텀이자 한중, 한일, 중일 3개 양자관계의 보완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이번 3국 정상회의의 방점은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의 26일 한중 회의에 있고, 양국 관계에야말로 '모멘텀' 성격을 가진다. 영어 모멘텀은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탄력, 가속, 계기, 전환의 의미를 지닌다.
한중 양국이 이번 만남을 계기로 관계 정상화로 나아갈 모멘텀을 마련할지 더 주목된다.

이번 3국 정상회의에 임한 중국의 입장은 한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사드(THAAD) 때 한국에 대한 강공이 꼭 성과를 낸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지난 2년 중국 입장에서는 윤 정부가 여러 '불편한' 행보를 했음에도 그 나름대로 대응을 자제했다. 그리고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해 외교적 성과를 내려는 한국에 호응해줌으로써 한중 양자관계에서 외교적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동시에 일본과 함께 한국과의 양자관계를 한일중 3국 관계 틀 내 묶어 둠으로써 미국의 한미일 소다자협력을 견제하고자 했다.

한국에 이번 3국 정상회의 개최는 여러모로 절실했다.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무역·투자 및 중국 내 기업활동 지원이 필요했다. 외교적으로 윤 정부는 미일과의 관계는 이미 충분하다고 보고, 이제 중국과의 관계에 성과를 내고자 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협조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이번 한중 회의는 한중 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한 필수코스였다.

하지만 이번 한중 회의에서 정부가 내세운 성과 중 하나인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재개 합의는 '재개의 합의'이다. 시간과 과정이 지난하게 소요된다. 한중 외교안보대화 신설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국가안보실장과 중국의 외교 국무위원 간 고위급 대화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 관계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이다. 전략적 소통의 필요성을 느낀 결과이다.

비록 정부의 미일 중시 외교노선은 바뀌지 않겠지만 하오펑 랴오닝 당서기의 4월 방한 이후 한국의 중국정책에 근본적이고 전략적 변화는 아닐지라도 전술적이고 기술적 차원의 정책적 조정은 감지된다. 그러나 한중 관계의 실제 변화 여부는 오는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기간 열리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알 수 있다. 이번 한중 양자회의와 한일중 3국 정상회의에서의 여러 '성과'가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상쇄될 경우 이번 회의의 의미는 퇴색되고 한국 외교는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리창 총리와의 회담 후 비가 내리자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를 언급했지만, 한중 관계의 진짜 봄비는 7월 여름이 되어서야 희(喜) 여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장 한중 관계를 격상하겠다는 식의 무리한 접근보다는 관계의 안정화를 위해 현상 유지 혹 적어도 관계 악화 방지가 더 중요하다. 어느 시점엔가 다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제약 속에 그래도 필요한 과도기적 신(新)전략적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후부터이다. 그나마 되살린 모멘텀을 키워 나가기 위해 한중 모두 상호존중적 정책을 펼쳐야겠지만 한국 입장에서도 당장 신중하게 접근할 일들이 있다.
최근에는 잠잠해졌지만 중국에 불필요한 자극적 발언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상대한다면 한국 측의 관계개선 의지도 전달될 것이다.
그러면 양국 관계의 모멘텀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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