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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첫 창극 연출...'만신: 페이퍼 샤먼'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03 12:49

수정 2024.06.03 12:49

'만신: 페이퍼 샤먼' 콘셉트 사진. 주인공 '실' 역을 맡은 김우정(왼쪽)과 박경민. 국립극장 제공
'만신: 페이퍼 샤먼' 콘셉트 사진. 주인공 '실' 역을 맡은 김우정(왼쪽)과 박경민. 국립극장 제공

중국의 경극 ‘패왕별희’부터 셰익스피어 고전 ‘리어’ 그리고 웹툰 ‘정년이’를 창극으로 선보였던 국립창극단이 이번에는 순수 창작극에 도전한다. 국내 1호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박칼린이 연출·극본·음악감독을 맡고, 명창 안숙선이 작창, 스타 소리꾼 유태평양이 작창보를 맡은 ‘만신: 페이퍼 샤먼’이다. 박칼린은 지난 5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창극 도전은 처음이라 무섭고 두렵지만 재밌다”며 “엄청나게 재미있는 퍼즐을 풀어가고 있다. 공포 속의 행복함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의 신작 '만신: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립창극단 단원 박경민, 박칼린 연출·극본·음악감독,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국악인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의 신작 '만신: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립창극단 단원 박경민, 박칼린 연출·극본·음악감독,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국악인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 사진=연합뉴스

■박칼린, 첫 창극 연출 "공포 속의 행복?"

‘만신: 페이퍼 샤먼’은 지난해 4월 부임한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유은선이 선보이는 첫 신작이다.
유 감독은 “해외 진출을 목표로 우리 전통적 이야기를 창극에 담아보고자 했고, 한국적인 소재를 현대적으로 풀어낼 연출가로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박칼린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를 둔 박칼린은 미국에서 첼로, 한국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하고 박동진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는 등 동서양의 음악적 감수성을 두루 갖춰 그만의 강점이 창극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주목된다. 특히 친가와 외가에 다 무속인이 있어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무속 문화를 접했다. 오래 전부터 무속을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해왔고 이번에 창극단의 러브콜을 받고 원래의 아이디어를 창극에 맞게 재구성했다.

박칼린 연출은 “어릴 적 부산에서 살았는데, 동네에 무속인이 많아 자주 굿을 구경했다. 외가를 통해 북유럽 무속 문화도 자연스럽게 접했다"고 말했다. 샤먼은 ‘예민한 자’ 혹은 ‘치유사’로도 불린다. 그는 “야구에 능하면 야구선수가 되고, 음악에 능하면 음악인이 되는 것처럼 예민한 사람들이 샤먼이 되는 것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며 ”무속을 치유의 영역으로 본다. 굿을 통해 상처받고 고통받은 세계 각지의 모든 생명과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공 이름 '실'은 박칼린의 한국 이름이기도 하다.

‘만신: 페이퍼 샤먼’은 영험한 힘을 지닌 ‘실’을 통해 만신의 특별한 삶과 그들의 소명의식을 이야기한다. 1막에서는 남들과 다른 운명을 타고난 소녀가 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되기까지를 그린다면, 2막은 만신이 된 ‘실’이 오대륙 샤먼과 함께 길을 떠나고 각 대륙의 비극과 고통을 다양한 형태의 굿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부터 서부 개척 시대 미국 원주민, 열대우림 파괴로 사라져간 아마존 원주민 부족 등 수많은 영혼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한 굿이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

국립창극단의 '만신: 페이퍼 사면'의 연출·극본·음악감독 맡은 박칼린 / 사진=연합뉴스
국립창극단의 '만신: 페이퍼 사면'의 연출·극본·음악감독 맡은 박칼린 / 사진=연합뉴스

■창극을 중심으로 전세계 토속음악 가미

동서양을 오가는 관계로 이번 신작은 새로운 소리와 음악으로 꾸며진다. 소리·민요·민속악을 근간으로 새롭게 작창한 소리를 중심에 두고, 무가(무속 의식에서 무속인이 구연하는 노래)와 각 대륙의 문화를 포괄하는 다양한 토속음악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극중에서 ‘실’과 신어머니가 부르는 무가는 이해경 만신에게 받은 원전 텍스트와 무속을 연구하는 이용식 전남대 교수의 연구 자료 등을 기반으로 한다. 삼신(아기를 점지하는 신)에게 비는 굿, 액을 막는 굿, 내림굿, 씻김굿 등 여러 종류의 무가를 무대화해 선보인다.

작창에 첫 도전한 유태평양은 “한국적이면서도 각 나라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음악이 준비돼 있다”며 “샤먼이 나라마다 달라도 사람의 아픔과 민족의 설움을 달랜다는 점에서 목적이 같듯 세계의 전통음악도 뿌리를 찾아가면 비슷한 느낌이 존재하더라. 아프리카 유학시절에도 느꼈는데, 이번에 민족음악 간 유사성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동서양 문화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어떻게 아우르냐는 물음에 박칼린은 “각 나라 특유의 사운드가 있으나, 이질감이 없다"며 "자연스럽고 편하다. 또 공연 작업 시 대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대본이 요구하는 음악과 무브먼트에 충실했다”고 답했다.

무대에는 약 4m 높이의 대형 나무가 세워지고, 언덕·돌담·개울 등의 자연적 요소로 꾸며진다. 북유럽 숲부터 한국의 작은 마을, 아프리카 해변 등 오대륙의 공간은 영상·조명 등을 통해 표현된다. ‘페이퍼 샤먼’이라는 작품 제목에 걸맞게 종이를 활용한 무대도 주목된다. 박 연출은 “무속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지다. 종이는 나무에서 오며, 태우면 사라진다. 또 인류 문화와 역사를 전해온 귀중한 기록 매체이며, 인간의 운명을 뒤바꾸는 생사의 경계는 종이 한 장보다도 더 얇다는 비유도 있다"며 종이의 의미를 짚었다.


‘실’ 역에는 김우정과 박경민이 더블 캐스팅됐다. 맑은 미성을 지닌 김우정은 창극 ‘춘향’의 춘향 역과 ‘정년이’의 권부용 역을 맡아 주목 받았다.
지난해 10월 입단한 박경민은 이 작품을 통해 첫 주역으로 데뷔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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