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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안지대', 전쟁 끝에 마주한 가족애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03 12:47

수정 2024.06.03 12:47

서울시극단 단원들이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연습실 공개 행사에서 연극 '연안지대'의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시극단 단원들이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연습실 공개 행사에서 연극 '연안지대'의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느날 존재조차 희미했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툭 날아든다. 젊은 시절 끔찍히 사랑했다던 어머니 옆에 아버지의 시신을 묻으러 하자 이모와 외삼촌이 떼로 반대한다.

아버지의 유품인 가방을 든 주인공 아들을 가운데 두고 배우들이 일렬로 서서 마치 음악에 맞춰 랩을 하듯 과장된 표정 연기와 함께 대사를 리드미컬하게 쏟아낸다. 그중 한 명은 바닥에 앉아 작금의 감정을 몸의 언어로 표현한다. 신선하고 기발한 연출에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러다 아들은 평생 떠돌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는다. 부모가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고, 또 얼마나 절절하게 자신을 낳았는지 그 가슴 아픈 출생의 비밀에 눈이 시큰해진다.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묻을 땅을 찾아 그의 고향으로 떠난다. 그런데 참혹하게도 그곳에는 내전으로 희생된 시신들로 가득 차 있다. 아들은 길에서 만난 전쟁 고아들과 아버지를 묻을 곳을 찾아 다니고 전쟁에 속절없이 무너진 세상을 목도한다.

서울시극단이 레바논 출신 캐나다 작가인 와즈디 무아와드의 '연안지대'를 오는 14~30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선보인다. ‘연안지대’는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 ‘화염’으로 유명한 무아와드의 전쟁 4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레바논 내전으로 고국을 떠나 프랑스, 캐나다 등을 방랑해야 했던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아픔이 드러난 수작을 ‘손님들’, ’이 불안한 집’ 등에서 감각적인 미장센과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정 연출이 자신의 언어를 더해 참신하게 각색했다.

최근 연습실이 공개됐는데 의상과 세트가 전무하고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채워진 무대였는데도 묵직한 감동을 안겼다. 전쟁이라는 비극을 소재로 하지만,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그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이 무겁지 않고, 때론 희극적이다. 또 가늠할 수 없는 전쟁의 고통을 딛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는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비극적인데 누군가의 장례를 함께 치르면서 서로를 보듬는 몸짓이 어딘가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김정 연출은 “전쟁이란 키워드는 잊고, 배우들이 오늘날 깨지고 흩어진 개인을 불러온다는 느낌으로 연기하고 있다"며 "누구나 상실의 경험이 있을텐데, 연극 감상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진지하게 애도하는 의미를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전세대가 지금세대에게 너희는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은 “여전히 전쟁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결정한 미련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연안지대를 보시라. 당신들이 이 연극의 창조자다”라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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