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장어 등 물고기 500여종에는 성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환경 변화에 따라 암컷이 수컷이 되고, 수컷이 암컷으로 변신한다. 이는 자연계 종족 보존의 법칙이다.
인간의 모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DHT(dihydrotestosterone)도 두가지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특정 환경에서는 모발을 탈락시키고, 어느 상황에서는 모발을 성장시킨다. 탈모를 일으키는 악당이기도 하면서, 모발을 성장시키는 천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DHT는 모발에 연계된 특징이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가슴에 털이 나는 것도 DHT가 결정적 원인이다. 두상이 민둥산처럼 되는 대머리에도, 남성성의 상징인 멋진 수염과 구레나룻, 가슴의 털 등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대머리는 두상에만 모발이 적을 뿐 눈썹, 턱수염, 가슴, 겨드랑이, 팔, 다리 등 전신에 털이 짙을 가능성이 있다. 모발은 신체 부위에 따라 호르몬에 대한 수용체 분포, 종류, 민감도가 다르다. 이로 인해 DHT의 요술이 가능하다.
DHT는 모발 성장 조절 물질이다. 같은 호르몬이지만 발현되는 부위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두피에서는 모발을 탈락시키는 반면에 눈썹과 그 이하의 신체에서는 오히려 털의 생장을 촉진시킨다. DHT의 요술은 모낭에서 5알파-환원효소와 안드로겐 수용체를 만날 때 가능하다.
DHT는 남성 호르몬으로 발육 촉진과 2차 성징을 발현시킨다.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5알파-환원효소를 만나 전환된 물질이다. 5알파-환원효소는 테스토스테론을 더욱 강력한 남성 호르몬인 DHT로 전환시킨다.
모낭의 세포와 피지샘에 존재하는 5알파-환원효소는 제1형과 제2형이 있다. 제1형은 피지를 만드는 데 관여하고, 제2형은 털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안드로겐 수용체는 안드로겐을 받아들이는 단백질이다. 안드로겐 수용체는 남성 생식기를 활성화하고, 모발 성장과 피지 생성에 관여한다. 또 테스토스테론과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을 받아들인다. DHT는 모유두 세포에 들어가 모발 성장 조절을 하고 피지선 증식에 관여한다.
모유두는 모발의 뿌리 가장 안쪽에서 모발의 성장을 담당하는 핵심 세포인데, 앞머리(전두부)와 정수리(두정부)의 모유두 내 안드로겐 수용체와 DHT가 결합하게 되면 모낭이 퇴축된다. 이로 인해 모낭에서 영양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모발은 가늘어지면서 탈락하게 된다. 모발이 제 수명인 5~8년을 버티지 못하고 조기에 빠지는 게 탈모다.
DHT는 앞머리와 정수리 모발의 성장은 억제하는 반면 눈썹, 수염, 가슴, 팔, 다리 등의 다른 신체 부위 체모는 성장시킨다. 대머리 남성 중 상당수가 다리와 팔 등에 체모가 많은 이유다.
DHT는 정수리나 이마 외의 신체, 즉 눈썹과 그 아래 신체에서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면 모낭 성장촉진 인자들이 활성화되면 모발의 성장기가 진행된다. 조기에 퇴행기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준다. 그 결과 수염 구레나룻 가슴 팔다리 등에서는 체모가 잘 자라게 된다. 이는 탈모인 가운데 가슴이나 팔다리에 체모가 많은 경우가 있는 것과 연결된다.
DHT의 신체 부위별 효과 차이는 탈모 3요소를 구성하는 안드로겐 수용체와 5알파-환원효소의 진피 모유두 세포 내 활성도에 따른 영향도 있다. 안드로겐 수용체의 mRNA는 전두부 두피, 수염, 겨드랑이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5알파-환원효소의 제1형은 모든 부위에서 활성화된다. 반면 5알파-환원효소의 제2형은 수염과 전두부, 두피, 진피 모유두 세포에서만 나타난다. 이는 안드로겐 작용의 반응성이 부위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탈모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DHT는이 작용되는 부위에 따라 탈모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남성성을 극대화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리본장어가 환경 변화에 따라 암컷이 수컷이 되는 것과 같이 DHT 또한 우리 신체에서 언제나 완벽하게 부정적인 호르몬도, 긍정적인 호르몬도 아닐 것이다. 어떤 환경인지에 따라 누구에게는 민둥산이 되고, 다른 누구에게는 남성성의 상징이 되는 DHT의 요술이 심술궂어 보인다.
/황정욱 모제림성형외과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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