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송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왕안석은 당대의 문장가이자 달변가로 신종 황제가 재위한 이후 신임을 얻어 신법(新法)을 만들어 정치개혁에 앞장섰다.
어느 날 왕안석은 황제와 함께 신법에 관한 논의를 하고자 알현했다. 그런데 갑자기 왕안석에게 편두통이 생겼다. 왕안석은 고통스러워했다.
황제가 물었다. “왜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요? 어디가 아픈 것이요?” 그러자 왕안석은 “갑자기 두통이 생겨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지금 신법에 대한 논의가 어려울 듯 하옵니다.”라고 했다.
황제는 왕안석에게 급히 중서성으로 가서 누워 있도록 했다. 중서성은 궁정의 행정을 총괄하는 관청이다. 황제는 왕안석을 특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왕안석은 중서성에 가서 누워있으면서 ‘아마도 황제께서 어의를 보내주시려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왕안석이 머리를 감싸 안으면서 끙끙 앓고 있을 때, 잠시 후에 환관이 작은 황금잔을 들고 들어왔다.
환관이 왕안석에게 황금잔을 내밀면서 말하기를 “이 처방은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비방입니다.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 코에 넣고, 오른쪽이 아프면 반대로 하고, 양쪽 모두 아프면 양쪽 모두 넣으면 즉시 낫는다고 하십니다.”라고 했다.
왕안석은 환관이 시키는 대로 코안으로 황금잔 안에 들어있는 액체를 부어 넣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즉시 두통이 멎는 것이다.
왕안석을 곧바로 황제를 알현했던 정전으로 들어와 “폐하께서 내려주신 처방을 코안에 넣으니 통증이 바로 멎었습니다. 어찌 어의를 통하지 않으시고 직접 처방을 내려주셨사옵니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자 황제가 말하기를 “궁중에는 태조 때부터 이러한 열 몇 가지의 비방이 있었지만 외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니, 이 처방이 그중의 하나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처방을 왕안석에게 모두 일러주었다.
시간이 흘렀다. 황주에는 소식(蘇軾)이 유배되어 있었다. 소식은 호가 동파여서 소동파(蘇東坡)라고도 불린다. 소식은 당시 신법을 앞세운 중앙정치를 비판해서 체포되어 옥살이를 한 후에 황주로 좌천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소식이 길을 나섰다. 소식이 금릉을 지날 무렵, 두통과 함께 눈이 충혈되면서 아팠다. 당시 금릉에는 우연히 않게 왕안석이 머무르고 있었다. 왕안석은 정치개혁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중앙 일을 뒤로 하고 회령관의 사신이 되어 금릉에 기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식은 왕안석을 만나 자신에게 두통이 있어 고통스럽다고 했다. 왕안석은 소식이 자신의 신법을 반대한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고통스럽다고 하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처방을 적용해 보고자 했다.
왕안석은 소식을 눕혀 놓고 “어느 쪽 머리와 눈이 더 많이 아픕니까?”하고 물었다. 소식은 “왼쪽이 더 많이 아픕니다.”라고 답했다.
왕안석은 조개껍질에 어떤 뿌리를 갈아서 즙을 냈다. 그리고 거기에 투명한 가루를 조금 섞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소식의 오른쪽 코안에 이 즙을 넣었다. 소식은 “화한 느낌이 나면서 코가 맵습니다.”라고 했다. 말을 마치자 마자 눈이 빠질 것 같은 두통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눈의 충혈도 조금씩 사라졌다.
소식이 왕안석에게 물었다. “이 처방은 무엇인데, 이토록 신비한 효과가 있습니까?”하고 말이다. 그러자 왕안석은 “황제께서 궁중 비방을 하사하신 겁니다.”라고 했다. 그리고서는 두통이 있으면 한두 번 더 넣으라고 남은 것을 챙겨 주었다.
소식은 황주로 돌아와서 인근 약방의 의원을 찾았다. 왕안석이 처방내용을 말해 주지 않아 의원에게 출타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처방 내용을 알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의원은 “맛과 향을 보니 이것은 무즙에 용뇌(龍腦) 가루가 섞인 것입니다. 원래 무가 모든 채소 중에서도 기를 내리는 가장 빠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코 안에 넣어 두통까지 치료한다니 저로서도 신기한 처방입니다. 무즙이 주된 효과를 냈을 것이고 용뇌는 다만 기를 소통시키는 보조적인 작용만 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소식은 이렇게 효과가 좋았던 처방이 단지 무라니 깜짝 놀랐다.
의원은 “의서에 보면 무는 맛이 맵고 달며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운을 내리고 곡식 소화를 도와 속을 편안히 해주며, 담벽(痰癖)을 없애어 사람을 건강하게 합니다. 그리고 무를 즙을 내서 먹으면 소갈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는 관절을 부드럽게 하고, 오장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밀가루 독을 제거하기 때문에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는 경우에 해독제가 됩니다. 그리고 담(痰)을 없애어 기침을 멈추고, 폐위(肺痿, 만성폐질환)와 토혈(吐血)을 치료하고 속을 따뜻하게 하고 부족한 것을 채워 줍니다.”라고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소식은 “그럼 생무와 익힌 무가 효능이 차이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의원은 “무는 날로 먹으면 갈증을 풀고 속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두통을 치료하고 열을 내리고 인후통을 줄이고 하기(下氣) 시키려면 생무를 사용해야 합니다. 예부터 연기에 질식해서 죽으려고 할 때도 생무를 즙을 내어 마시게 해서 살게 했습니다. 반면에 익혀 먹으면 가래를 없애는 효과가 있습니다. 익혀 먹어도 소화를 돕는 작용이 있지만 무는 익히면 떡이나 밥을 소화키는 효능이 떨어집니다.”라고 설명했다.
소식은 무에 이처럼 많은 효능이 있는지 몰랐다. 그 이후로 소식은 생무를 많이 먹었고 그래서 그런지 유배지에서 생활을 보다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다.
무즙에는 질산염이 포함되어 있어서 산화질소를 생산하는 좋은 공급원이 된다. 무즙에 의해서 생성된 산화질소는 혈관을 이완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코안쪽 점막에는 많은 혈관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마나 측두부까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무즙을 코에 넣어주면 두개골을 감싸고 있는 혈관에 영향을 미쳐서 두통이 일시적으로라도 사라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편두통에 무즙을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과거 연탄가스로 중독이 되면 동치미 국물이 응급약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효과도 위와 동일한 기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무즙의 효과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혈관을 이완시켜 뇌로 산소공급량을 늘려주는 것이다.
‘연기를 많이 마셔서 질식하면 무즙을 마시게 하라’는 내용이 의서에도 나오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된 치료법임을 알 수 있다. 민간요법이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편두통에 무즙을 코안에 넣어주는 치료법은 이후에 다양한 의서에도 실리게 되었다.
* 제목의 ○○은 ‘무즙’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휘> 偏頭風. 王荊公安石奏事, 忽覺偏頭痛, 不可忍, 命在中書偃臥, 而已. 小黃門持一小金杯藥少許, 賜之云, “左痛卽灌右鼻, 痛右卽反之, 左右俱痛幷灌之.”, 卽時痛愈. 明日入謝, 上曰, “禁中自太祖時, 有此十數方, 不傳人間, 此其一也.” 因幷賜此方. 蘇軾自黃州歸過金陵, 安石傳其方, 用之如神, 但目赤, 少時卽愈. 法用新蘿葍取自然汁, 入生龍腦少許, 調匀, 仰頭使人, 滴入鼻竅. (편두풍. 형공 왕안석이 임금께 주사 중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편두통이 일어, 임금께서 급히 중서에 가서 누워있으라고 하였는데, 잠시 후에 환관이 작은 황금잔에 약을 가져와 주면서 말하기를,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 코에 넣고, 오른쪽이 아프면 반대로 하고, 양쪽 모두 아프면 양쪽 모두 넣으면 즉시 낫습니다.”라고 하기에 그리하였더니, 즉시 통증이 멎었다. 다음날 임금께 사례하니, 임금께서 말하길, “궁중에 태조 때부터 이러한 열 몇 가지의 처방이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니 이 처방이 그중의 하나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처방을 모두 주었다. 소식이 황주에서 금릉을 지나갈 때 왕안석이 이 처방을 전하였는데, 사용하자 신기한 효과를 보였고, 눈의 충혈이 조금 지나자 바로 나았다. 쓰는 방법은, 새 나복에서 자연즙을 내어 생용뇌 약간을 넣고 섞은 다음 머리를 젖히고 다른 사람이 콧구멍에 넣어준다.)
<동의보감> 偏頭痛, 取生蘿葍汁一蜆殼, 仰臥注鼻中, 左痛注左, 右痛注右, 左右痛俱注之, 神效, 數十年患, 皆一二注而愈. (편두통에는 가막조개 껍질 하나를 채울 만큼의 생무즙을 준비한다. 환자를 반듯하게 눕히고 콧속에 이것을 넣는다. 왼쪽이 아프면 왼쪽에 넣고, 오른쪽이 아프면 오른쪽에 넣으며, 좌우가 아프면 좌우에 모두 넣는다. 이 방법은 신효하여 수십 년 동안 앓고 있는 환자도 1~2번 주입하면 낫는다.)
<본초정화> 蘿葍. 根, 辛甘 葉辛苦 冷 無毒. 主下氣, 消穀和中, 去痰癖, 肥健人. 擣汁服, 止消渴. 利關節, 鍊五臟惡氣, 制麪毒, 行風氣, 去邪熱. 消痰止嗽, 肺痿吐血, 溫中補不足. 生食, 止渴寬中, 煮食, 化痰消導. 烟熏欲死, 擣汁飮. (무뿌리. 뿌리는 맛이 맵고 달며 잎은 맛이 맵고 쓰고,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 기운을 내리고 곡식 소화를 도와 속을 편안히 해주며, 담벽을 없애어 사람을 살찌고 건강하게 한다. 즙을 내어 먹으면 소갈을 치료한다. 관절을 부드럽게 하고, 오장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밀가루 독을 제거하고 풍기를 행하게 하여 없애고 사열을 없앤다. 담을 없애어 기침을 멈추고, 폐위와 토혈을 치료하고 속을 따뜻하게 하고 부족한 것을 보태준다. 날로 먹으면 갈증을 풀고 속을 편하게 해주고, 익혀 먹으면 담을 없애고 소도하는 작용이 있다. 연기에 질식하여 죽을 것 같을 때, 즙을 내어 마신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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