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존 오브 인터레스트'
미 아카데미 음향상·국제장편영화상도 받아
은유로 넘실대는 영화 '악의 진부함' 드러내
실업률의 허구성 고용보조지표도 역부족
고용의 질 담아낼 새 지표 필요하다는 의견도
미 아카데미 음향상·국제장편영화상도 받아
은유로 넘실대는 영화 '악의 진부함' 드러내
실업률의 허구성 고용보조지표도 역부족
고용의 질 담아낼 새 지표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 남편한테 말하면 너 따위 아무도 모르게 재로 만들 수 있어.”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파이낸셜뉴스]거슬리는 가정부에게 날린 진심 100%의 경고. 은유로 넘실대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인공 헤트비히 회스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경고다. 한 번만 더 거슬리면 담장 너머 가스실에 집어넣겠다는 말에 유대인 가정부는 머리를 조아린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아우슈비츠의 소장 루돌프 회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 집단 학살지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엄마' 헤트비히는 아우슈비츠 소장 사택에 딸린 텃밭을 정원으로 가꿨다. 3년 동안 골분비료로 뿌려가며 해바라기와 포도나무, 라일락을 키워냈다.
담장의 저쪽은 홀로코스트, 전쟁 중 나치가 자행한 대학살의 현장이다. 이쪽은 회스 가족의 낙원 같은 집. 식물로 담벼락을 가려도 치솟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불길과 연기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함소리도 마찬가지.
새빨간 불빛과 ‘우웅, 쿵쿵’대는 소음을 의식하는 이는 처음 이 집을 ‘낙원’같다고 말하던 할머니 뿐이다. 소음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들은 번쩍이는 금니를 가지고 놀고 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은 희생자의 금니를 녹여 금괴로 만들었다.
직접 말하지 않고 말하고 싶은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최고의 예술이 ‘시(詩)’라면 이 영화는 시 같다. 감독은 영화 내내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고 은은하게 들려준다. 흑·백·적·점으로 이어지는 암전 때문일까. 영화는 때로 연극처럼도 느껴진다. 마지막 씬에서는 다시 시일 수 있다고 느꼈다. 영국 시사주간지 ‘스펙테이터’는 “이 영화가 어쩌면 평생 당신을 괴롭힐 것”이라고 평했다.
6일 새벽 서울 여의도 IFC몰 CGV에서 영화를 봤다. 스릴러 장르 영화도 아닌데 온몸은 차갑게 식고, 멀미가 몰려왔다.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관객의 행렬과 반대 방향으로 청소노동자 한 명이 '저벅저벅' 들어왔다. 그의 머리는 헤드 랜턴이 꽉 쪼이고 있었다. 그의 손엔 영화가 끝난 뒤 캄캄해진 영화관 의자 사이에 떨어진 팝콘을 주워 담을 쓰레기통이 들려 있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적막한 쇼핑몰에서 탑승식 바닥물청소기에 올라탄 청소노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대리석 바닥에 광을 내고 있었다. 청소차가 내뿜는 소음은 웅장했다. 영화를 보러 오는 길, 팝콘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시간에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삶의 무대 뒤편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옷맵시가 어떠했는지, 그들의 작업이 발생시키는 소음이 얼마나 컸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영화에서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리는 헤트비히는 유대인 가정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말 그대로 해고가 살인인 공간에서 가정부의 고용 안정성은 ‘0’다. 나치는 치솟던 실업률을 해결할 수 있다는 구호로 집권했다. 유대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포로, 집시, 정치사범, 퀴어, 장애인들을 강제노역시키던 수용소 입구에도 구호를 걸어뒀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나치는 전쟁과정에서 군수산업을 일으켜 실업률 0%, 안전 고용을 달성했다고 선전했다. 고용률·실업률 지표가 노동시장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은 오래됐다. 특히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 화물차 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 캐디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 비중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발전소 같은 하청도 일상화 됐다. 여성의 비경제활동인구 비중까지 높아 체감과 달리 실업률은 언제나 낮고 변동도 크지 않다.
통계청에서 매월 작성하고 있는 고용률은 15세 이상 인구(노동가능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일할 의사가 없(거나 없다고 비춰지)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애초에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일할 의사가 없다면 실업자가 아니라는 것.
국제노동기구(ILO)도 이같은 고용률·실업률 지표와 국민 체감도 사이의 괴리를 잘 알고 있다. 통계청도 지난 2014부터 공식 실업률 지표가는 노동시장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판단해 고용보조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고용보조지표에는 영화관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시간관련 추가취업 가능자)들은 물론, 구직활동을 못(안)하고 있을 뿐 취업 의사가 있고 취업 가능성이 있는 사람(잠재구직자)도 포함된다. 또 구직노력을 했으나 육아로 당장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잠재취업가능자)도 들어간다.
고용보조지표는 포괄범위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작성되고 있지만, 아직도 고용시장의 현실을 드러내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한국은행은 고용 형태, 근로 시간 등이 반영된 새 고용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현행 고용지표가 보여주지 못하는 고용의 질적 측면을 살펴 통화 정책 전망에 반영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월 ‘고용의 질을 고려한 고용지표 개발’ 연구용역을 공모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고용상황이 경기 상황에 따라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노동시간, 임금 등)에서도 변화하기 때문에 고용의 질을 고려한 실업률, 고용률 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정부가 제공한 공공근로 일자리의 비중은 얼마나 되는지 고용보조지표로는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고용의 질’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서류 미비(불법 체류)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누구도 알 수 없다. 제대로된 통계도 없다. 이들도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직접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핑계로, 국적이 다르다니까 그래도 된다는 착각때문에 고용안정성이 ‘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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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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