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애플 제치고 美시총 2위로
日·대만 치고 나가는데 우린 남탓만
日·대만 치고 나가는데 우린 남탓만
AI 전용칩 시장 80% 이상을 독점하는 '엔비디아 천하'는 우리에게 양날의 칼이다. 기회이자 위협이다. 엔비디아 GPU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SK하이닉스가 공급 중이다. 삼성전자도 납품 테스트 중이다. AI 시대가 이제 막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 HBM과 같은 첨단 반도체 수출이 우리 경제를 견인할 호기임은 분명하다. AI 기대감이 밀어올린 버블이라는 일각의 견해도 있으나, 엔비디아의 아성이 쉽게 무너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선제적 시설투자와 기술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는 승자독식의 반도체산업 속성 때문이다. "HBM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게 아니다"라고 한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의 한마디에 국내 시총 1위 삼성전자 주가가 출렁이는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이 실감난다.
엔비디아의 질주는 반도체 패권전쟁과도 직결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엔비디아와 매우 밀접한 비즈니스 파트너다. 대만계 젠슨 황은 자신의 우상이 TSMC 설립자 모리스 창이라고 할 정도다. 대만 라이칭더 정부는 반도체 전문가를 경제부 장관에 임명하고 "반도체 섬에 'AI 섬'을 건설하겠다"며 반도체·AI 첨단산업에 전폭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대만의 반도체 동맹까지 단단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1조엔이 넘는 보조금을 지원해 올해 초 세계 최단 공기로 TSMC 1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연내 2공장까지 착공한다. 나아가 자국 신생 반도체회사 라피더스가 2027년에 2나노 AI 반도체를 생산하도록 재정지원법까지 제정하겠다고 한다. 2나노 양산기술을 가진 회사는 삼성과 TSMC, 인텔뿐이다.
일본·대만 등의 AI·반도체산업 급팽창에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2047년 622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 2027년 AI 3대 강국 도약 등 정부가 올 들어 발표한 비전만 봐선 굵직하고 화려하다. 반도체산업 인프라·연구개발에 26조원을, AI와 반도체 기술에 10조원을 지원, 투자하겠다는 추가 대책도 내놨다. 그런데도 각계에서 한국의 반도체·AI 산업 경쟁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왜일까. 클러스터 내 반도체 공장 착공은 송전망 설치 등이 지역갈등에 막혀 있고, 반도체 시설투자 세제특례(K칩스법)와 클러스터 송전망 인허가 규제 완화(전력망확충특별법) 등 관련 법안은 모두 폐기됐다. 기업들은 투자계획이 지연돼 애를 태우고 있는데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이 서로 남탓만 하고 있는 꼴이다. 민관이 힘을 모아도 늦은 판에 '냄비 속 개구리'같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건 아닌가. 여야 막론하고 뜻있는 정치인들이 전향적인 반도체·AI 관련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