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엘리엇 사태 재현시 어쩌란 말이냐" 상법 개정안 강행에 재계 '부글'

김동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09 14:03

수정 2024.06.09 14:03


이사의 충실의무 관련 상법 개정 추진 내용
현행 이용우 의원안 (2022년 3월 발의) 박주민 의원안 (2023년 1월 9일 발의) 정준호 의원안 (2024년 6월 발의)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사의 충실의무(상법 제392조의3)의 범위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 추가 이사의 충실의무(상법 제382조의3)의 대상에 총주주 포함, 소정 규모의 현물출자로 자회사 설립시 주총 특별 결의사항으로 하고 반대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 인정 이사의 충실의무(상법 제382조의3)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로 변경

[파이낸셜뉴스] "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했던 엘리엇 매니지먼트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이사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공청회를 앞두고 기업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상법이 개정되면 소송 리스크로 인해 신속하고 과감한 기업의 의사결정이 어려워져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동력이 훼손된다는 지적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12일 상법 개정 방안을 논의하는 공청회를 앞두고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현행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재계에선 기존 법 체계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데다 소송 남발을 부추겨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악화시킨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상법 개정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건 4년 전이다. 당시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 분할을 놓고 '쪼개기 상장' 논란이 일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더불어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22대 국회 개원 직후 다시 발의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이 기존 법 체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상법은 '이사는 정관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도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엄격히 구별된다"며 "회사의 이사는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 제고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사의 직접적 계약 관계는 회사와 있다"라며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 양측 모두에게 소송을 당할 수 있게 돼 상법 개정은 신중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더라도 대주주와 행동주의펀드의 입장이 상반되면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가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규제 개선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추세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일본·독일은 이사에게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부과하고 이사의 배임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영국은 배임죄 조항이 없고 회사법상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규제 완화라는 추세 속에서 상법 개정은 오히려 한국만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이중적 충실의무를 지게 하고 있다"라며 "신주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하면 반발하는 주주들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자사주를 매입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배임죄로 처벌받는 '사법 리스크'를 상시 떠안게 된다"고 토로했다.

재계는 상법 개정이 신속하고 과감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이 오히려 기업 성장동력을 훼손시켜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라며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노린 근시안적 규제 강화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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