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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건강이 첫번째 가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10 18:15

수정 2024.06.10 20:10

민병두 보험연수원장
민병두 보험연수원장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성경 말씀을 제대에 올라와서 봉독하는 전례가 있다. 지인이 독서 담당을 해서, 미사가 끝나고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려고 다가갔더니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게 아닌가.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 섭섭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젊은 사람인데 황반변성에 걸려서 사람을 식별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이다.

성경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듣고 외워서 한다고 한다. 여러 번 읽고 필사를 하면서 외우기도 힘든데, 수십번을 반복해서 듣고 암기하는 정성! 아니 간절함이라고 할까? 틀리지 않고 독서를 할 테니 당번에서 제외시키지 말아달라고 했다는데 스스로 물러났다.
독서를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은 목소리를 하늘에 닿게 하려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한 성당을 20년 가까이 다니다 보니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이들이 많다. 어린아이들이 커가는 속도도 무섭게 빠르지만, 나이 드신 분들의 노화도 하루가 다르게 진행된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외롭기도 하고 겸손해지기도 해서 인사를 하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얼굴이 환해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거나, 지나치게 반응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가벼운 인지장애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는 경우에는 결국 얼마 안 있어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들린다.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은 혹시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못 알아보는 실수를 할까 걱정이 되어서 무조건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반응을 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누군지 모르고 인사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조기에 발견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이는 젊은 나이에 '뇌 실질 위축' 증세가 발견되었다는 경고를 받은 후부터 '기억 일기'를 쓴다. 자신의 일생을 회고록 형식으로 쓰는 것은 아니고, 매일매일 자신이 깜박하거나 기억하지 못했거나 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는다. 대화 중에 단어를 찾지 못해서 당황한 일, 버스나 전철을 잘못 타거나 길을 착각하는 일 등등을 적어나간다.

그러고는 중학교 시절 영어 단어 암기하듯이 기억을 끄집어내어 암기를 한다. 노화가 진행됐을 때 어느 한 단어가 기억이 안 나는 것은 젊었을 때와 달리 수백 가지 단어나 사건을 잊어버린 것의 편린이다. 지리, 산수, 음정 등 기억을 포기하게 되면 그에 비례하여 능력이 쇠퇴한다. 이…그…저…있잖아를 반복하다가 말을 잃어버린다. 껍데기인 몸만 남는다.

아는 분이 파킨슨병에 걸려 걸음이 힘든데도 성당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을 봤다. 몇 걸음 옮기기도 힘들고 쉽게 넘어진다. 그래도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옮길 수 있으면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앞서 황반변성에 걸렸어도 독서를 꼭 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분도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간절히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최근에 공부 모임에서 아는 분을 만났는데 거동이 불편한 것이 역력해 보였다. 담담하게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 몇 년째 동네 사람들과 어싱(맨발걷기)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도인과도 같았다. 자신이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이겨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을 것을 깨달았다. 큰 병에 걸렸어도 탓하지 않고 병을 벗으로 생각한다니 놀랍기도 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교훈을 건강할 때는 깨닫지 못한다. 이미 건강을 망치거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중년이 되면 건강을 제1의 가치로 삼고 살 때가 되었다. 중년에 내가 살아온 길이 노년의 나를 규정한다.
오늘 아침에는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들으며 산을 달렸다.

민병두 보험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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