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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내를 시각화한 움직이는 마네킹? [최상호의 오페라 이야기]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10 19:04

수정 2024.06.10 20:32

오페라 '죽음의 도시' /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죽음의 도시' /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지난 5월 26일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한 국내 초연작 '죽음의 도시'가 막을 내렸다. 공연이 끝나고도 멈출 줄 모르는 박수 소리에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의 근심과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죽음의 도시'는 벨기에의 도시 브뤼헤를 배경으로 주인공 파울이 죽은 아내 마리를 닮은 마리에타를 만나면서 아내와 마리에타, 현실과 망상을 혼동하게 되는 매우 독특한 스토리의 작품이다.

특히나 이번 프로덕션의 특이한 점은 죽은 아내를 시각화했다는 점이다. 무대 위에 마네킹을 세워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하지만 단순한 마네킹이 아니다. 파울이 마리에타를 보며 마음이 흔들리자,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음악에 맞춰 갑자기 마네킹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네킹으로 분장한 무용수라 생각하지 못했던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기획자로서 기분 좋은 비명이었다. 또 파울이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마네킹은 살짝 손을 흔든다. 파울의 선택을 응원하는 듯한 모습에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죽음의 도시'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음, 그리고 남아있는 자들이 가진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에 대한 작품이다. 이 복잡한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성악가들은 지난 두 달간 연습에 매진했으며 그 지난한 과정에서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작품을 보는 내내 앞서 가신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그리움이 몰려왔다.
관객들이 남긴 후기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성악가들이 똘똘 뭉쳐 열정을 다해 작품을 공부하고 작품이 가진 본연의 매력을 잘 살려낸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젊은 성악가들과 경험 많은 주역들이 함께 애썼던 이번 작품이 많은 분들에게 이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정서적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죽음의 도시'가 한국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되길 희망하며 앞으로도 오페라를 통해 예술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죽음의 도시'를 사랑해주신 관객들을 포함해 모든 이들에게 파울의 마지막 아리아 속 가사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내게 머문 행복인 내 진실한 사랑이여, 이제는 안녕!"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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