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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의 기술빅뱅] 네이버의 실리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10 19:19

수정 2024.06.10 19:19

라인 사태는 AI 패권전
포기 힘든 2억명 인프라
소뱅과 협상력 괜찮은가
논설위원
논설위원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10년 은둔생활을 끝내고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곳은 일본 도쿄 시부야다. 일본에서 출시한 모바일 메신저앱 라인 사무실에서 열린 가입자 3억명 돌파 기념식에서다. 2013년 11월이었다. 깜짝 등장이었고 깜짝 고백이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있었지만 이제 괜찮다, 꿈같다.
하지만 거대한 글로벌 빅테크의 벽을 실감했다. 앞으로 잘 싸울 수 있을지 두렵다."

라인의 탄생과 성장은 그의 말대로 꿈같은 일이었다. 일본 사업을 2001년부터 했으나 검색엔진은 10년 동안 꼴찌를 면치 못했다. 매일같이 발버둥 치고 괴로워하면서 술을 마시다 해 뜨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동일본대지진(2011년 3월)이 터지자 이해진 GIO는 사무실에서 혼자 펑펑 울었다. 사는 게 공포스러웠던 그 순간 떠올린 사업이 지진에도 끄떡없이 서로를 이어주는 메신저 라인이다.

한달 반 만에 라인은 세상에 나왔다. 개발팀 20명의 직원이 밤을 새우며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보다 스마트폰 보급이 늦었던 일본은 때마침 피처폰에서 갈아타는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카카오도 이 시장을 봤으나 앞서 현지화를 끝낸 라인에 밀렸다. 라인의 영토가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동남아로 뻗어나간 것도 순식간이었다. 지금 매월 실질이용자 수가 2억명인 것도 이 지역 인프라 덕이다.

네이버의 일본 진출은 국내 시장만으론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국을 넘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라인 성공 후 2억명 빅데이터를 가진 이 플랫폼을 AI 컴퍼니로 키워 세계를 공략하겠다는 구상을 한다. 하지만 구글, 아마존의 자본과 투자력에 곧잘 길을 잃었다. "국경과 시간 제약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나타났다. 매일 아침 눈뜨는 것이 두려웠다." 네이버 20주년 기념식(2019년)에서 이해진 GIO가 했던 말이다.

전진이냐 제자리냐 갈림길의 라인에 등장한 이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다. 2017년 비전펀드를 출범시킨 후 손 회장은 될 것 같은 AI 기업만 투자 바구니에 골라 담고 있었다. 라인을 눈여겨본 그는 이해진 GIO에게 소뱅의 야후재팬과 라인을 아예 합칠 것을 제안한다. 손 회장은 네이버의 AI 기술과 인재가 탐났고, 이해진은 소뱅의 자본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라인야후는 안으로는 구글, 아마존의 공세를 막고 밖으로는 아시아 최대 AI 테크기업을 꿈꿨다. 라인 입장에선 시작부터 끊이지 않았던 국적 시비도 잠재울 수 있는 카드로 봤을 것이다. 네이버와 소뱅이 50대 50 지분을 갖는 합작사 A홀딩스의 라인야후는 그렇게 탄생했다.

손 회장이 라인에 통합을 제안한 때가 2019년, 작업이 마무리된 것이 2021년이다. 세계의 칩전쟁과 공급망 패권 싸움이 치열해지던 시기와 겹친다. 그사이 경제안보법을 물밑으로 추진해온 일본은 이 법을 2022년 5월 전격 통과시켰다. 특정 사회기반 서비스의 안정적 제공 등을 목적으로 한 법이다. 라인야후가 폭풍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그 후다.

지난해 11월 터진 라인의 정보유출 사고, 이를 빌미로 한 일본 총무성의 두 차례 행정지도로 네이버는 중대 결심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총무성은 보안 문제를 해결하고 지배적 자본관계 재검토를 지시했는데,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소뱅의 입김이 강한 라인야후 경영진이 먼저 움직였다. 네이버로부터 순차적으로 기술독립을 이뤄내고 지분 매입도 서두르겠다는 것이다.

침묵하던 네이버는 그 말이 맞는다는 것만 대외적으로 알렸다. 이를 두고 한동안 한일전으로 시끌시끌했으나 이제는 민간기업 간 협상의 문제가 됐다.
네이버를 향해 제값을 받고 실리를 찾으라는 주문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게 나을 수도 있겠으나 일본 정부가 뒤에 서 있는 소뱅의 협상력이 만만해 보이는가. 라인 사태는 민관이 다 뛰는 AI 패권전이다.
우리 정부의 분발이 필요하다.

jin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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