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0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똑같이 여야 간 대화와 협상에 기반한 협치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매우 요원하다. 22대 국회는 개원 첫 주부터 원 구성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상임위 구성과 위원장 결정은 학교의 반 편성과 반장 선출 같은 것인데, 여기에서부터 대화의 문이 꼭 닫혀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주체인 국민 유권자의 관점에서는 참 답답한 노릇이다.
국회가 정상화돼야 민생과 경제 현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노사, 연금, 교육, 저출생, 의료 문제 등 산적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논의가 시작되는데 갈 길이 너무 멀다.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국회 입법 기능이 마비되면 '시행령 국정'이 불가피한데, 이 또한 정상은 아니다. 여의도 정치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 삼권 중 유일한 국민투표 대의 권력기관인 국회를 통한 민주주의의 길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100여년 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초기 민주주의 실험 시대에 막스 베버가 한 대학에서 한 강의에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인'(1919년)의 덕목 중 하나로 강조한 것이 '균형감각'이다. 베버가 언급한 정치인의 '열정'과 '책임윤리'가 똑같이 중요하지만, 이 시대 이 나라의 정치인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균형감각이다. 균형감각을 상실한 정치인의 열정 그리고 장기적 비전의 책임윤리를 대체한 신념윤리의 지배는 독단을 낳고, 대화의 단절을 초래해 민주주의에 해악이 됨을 매우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 시대의 정치인들은 정치입문기부터 선거를 치르면서 '전사(warrior)'로 양성되어 왕성한 전투욕만 키웠을 뿐, 공동체를 보호하고 그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기사(knight)'의 덕목을 감쪽같이 잊었다. 기사의 덕목이 바로 역지사지의 균형감각인데 말이다. 균형감각은 타인에 대한 그리고 상대 정당과 다른 관점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된다. 물론 '가장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논쟁을 통한 합의가 필요하다. 헌법이 규정한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의 가치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열린 토의와 협상이 필요하다. 토론과 협상의 테이블에 등판한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열정과 책임윤리를 다소 자제한, 기사다움의 균형감각이다. 자신의 정당과 정파의 이해관계 그리고 정권과 정당 보스의 안위도 과감히 넘어서서. 토론 테이블에서 유연하게 국민주권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정치인들은 자신이 대변하는 국민이 자신의 정당을 지지한 유권자만이 아니라는 점을 자주 잊는다. 갈등과 반목, 소모적인 무한 정쟁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균형감각은 정치인의 절대 덕목이지만, 실상 어느 누구도 이 점에서 완전할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5.5대 4.5의 균형감각'이다.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이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7대 3 혹은 8대 2의 비율에 가두어 두는 한 더 이상 대화와 협상은 없다.
언론의 관점과 논조는 절대적으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7대 3 혹은 8대 2의 관점은 유튜브식 논조다. 책임 있는 언론의 논조 역시 5.5대 4.5의 균형감각 위에 설정하는 것이 공론의 효율적 수렴에 도움이 된다. 설사 밋밋하고 재미없어 보이더라도 대화와 협상 그리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 실현에 도움이 된다면 정치인도, 언론도 이 길을 가야 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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