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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 톺아보기] 동양철학 공부.. 마음 근육 키운다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13 14:52

수정 2024.06.13 14:53

카페에서 만난 동양철학 / 리소정 / 힘찬북스
카페에서 만난 동양철학 / 리소정 / 힘찬북스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는 지인이 한국 강연 일정을 마치고 “강의 도중에 슬그머니 나갔다 들어오면서 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해 하는 학생이 하나도 없더라”면서 혀를 차는 모습을 보고 속이 편치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현상은 한글세대가 한자와 한문에 멀어지고, 그러면서 동양 고전과 보감들을 접하는 기회가 적어진 데 하나의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서양 문물과 함께 ‘신사도’니 ‘에티켓’이니 ‘매너’ 같은 개념이 들어와 자리를 잡은 마당에 영어가 한자나 한문을 대체한 것일 뿐 달라질 게 있냐고 반박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동양 문화와 사상, 세계관이 골수에 새겨진 한자나 한문 교육과 달리 서양의 언어 교육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주로 해당 언어에 대한 이해와 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옛 글방 도령들의 첫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천자문'의 맨 앞 구절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宇宙洪荒)”을 예로 들어보자. “하늘은 알 길 없이 가물가물하고 땅은 누런 빛깔이며 우주는 한도 끝도 없이 거칠고 무성하다”라는 말인데, 영어를 익히며 배운 첫 문장 “I am a boy. You are a girl”과의 차이를 이해하겠는가?

'카페에서 만난' 시리즈는 동양의 인문 고전들을 낯설거나 어렵게 생각하는 한글세대들을 위해 기획됐다. 한자나 한문이라면 기함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듯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짧고 흥미로운 예화들을 배열해 자연스럽게 동양 사상의 깊은 맛에 빠져들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아직도 ‘매우’ 유효함을 깨닫게 해보자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카페에서 만난 동양철학'은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한 출발점인 ‘수신(修身)’의 여러 요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리더의 자질과 바탕, 세상을 대하는 리더의 자세, 수련과 성찰을 통한 자기계발 등 세 부문에서 각각 ‘효와 윤리’, ‘노력과 발전’, ‘인재와 학문, 독서, 성찰’에 관한 선현들의 지혜를 풀어내는데, 각 장의 큰 주제 아래 그와 관련된 고사나 경구, 시구 등을 짤막한 이야기 형태로 풀어 놓음으로써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독서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유예(猶豫)’란 동물 이름이다. 그중에서도 유는 원숭이에 해당하는 동물이다. 이놈은 얼마나 의심이 많은지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나도 절대로 나무에서 내려오는 법이 없다. 그러니 평소에도 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지 머뭇거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 예라는 놈은 코끼리의 일종이다. 큰 코끼리는 물을 건널 때 천천히 여유 있게 건너지만 이놈은 건널까 말까 망설이다가 시간을 다 허비하고 만다. 이와 비슷한 동물이 또 있다. 이른바 ‘낭패(狼狽)’라는 놈이다.
어떤 놈은 앞다리가 하나 없고 어떤 놈은 뒷다리가 없다.

그러니 앞으로 나가려고 해도 넘어지고 뒤로 나가려 해도 넘어져 결국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유예’라는 것은 이 동물과 같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사는 모양을 빗댄 말이다.

동양철학이 범접하기 어려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유예’나 ‘낭패’처럼 우리 일상에 뿌리내린 일상어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동양 인문 고전들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경연 프로에 나온 가수들이 흔히 하는 말, “즐기겠어요!”, 즉 “아는 자는 좋아하는 이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이만 같지 못하다”라는 그 말이 2500여 년 전 공자의 가르침인 걸 알고 나면 옛글을 대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리소정 인문작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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