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랭한 내수는 경기 전반에 부담이다. 수출 회복세로 경기흐름이 개선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수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정성이 떨어진다. 수출 '외끌이' 경기는 불안하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수출은 8개월째 개선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수회복 조짐은 미미하다. 도소매 취업자가 올 3월 이후 감소하다 5월 전년동월 대비 7만3000명 줄었다. 바닥경기가 그만큼 안 좋아 고용을 줄인 것이다. 정부가 매월 발간하는 경제동향보고서 '그린북'에서 "내수 온기 확산 등 체감할 수 있는 회복"이라는 정책방향을 빼놓지 않는 것은 그만큼 수출이 내수에 미치는 '낙수효과'가 미미하다는 방증이다.
고금리를 낮추는 게 소비개선에는 특효약이다. 높은 금리는 소비 여력을 감소시키고 설비투자를 늦추는 핵심변수라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쉽게 금리를 못 내리고 득실 논쟁이 치열한 것은 이유가 있다. 글로벌 각국의 통화정책이 거대한 전환기여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국가들은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 하락과 이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 수입물가 상승 등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내수만 고려하기엔 시장의 연결성이 너무 촘촘하다.
기준점은 당연히 미국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인화성에 대한 부담이 커서다. 근원물가를 보고 또 보고, 고용을 거듭 살핀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오랜 긴축 끝에 14.8%까지 올라갔던 물가가 잡혔다는 판단 아래 금리인하를 단행했다가 호되게 당한 악몽 때문이다. 그것도 물가를 중시하는 중앙은행 맨들이 최고로 존경한다는 '인플레 파이터'의 대명사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시절의 실패 사례다.
국내 경제상황을 보자. 내수를 감안하면 인하를 서둘러야 한다. 내수침체는 고금리 지속으로 심화되고 있다. 만약 금리를 낮추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체, 금융불안으로 이어지는 부실 고리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미국보다 먼저 금리인하를 단행해도 금리격차 확대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가 높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럽연합(EU), 캐나다가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내렸다는 근거도 있다. 금리인하 선제론 논거들이다.
다만 꼼꼼히,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물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물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들은 여전하고 기후변수까지 기승을 떨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언급은 타당해 보인다. 중동분쟁 장기화, 미국 대선 등 국내 정책으로 대응하기 힘든 대외변수들의 돌출 우려도 높다. 경기부진 우려에도 정부가 '금리인하 압박' 신호를 간접적으로라도 내지 않고 있는 이유다. 총선 물가민심 위력을 체감해 몸을 사리는 측면도 있겠지만 2%대 안정적 물가까지 갈 길은 멀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나 싶다. 물가에 불씨가 튈까 봐 유류세 인하도 8월 말까지 연장했을 정도다. '립스틱 효과'가 만연한 상황에서 금리인하 신중론의 입지는 좁아 보인다. 그럼에도 '폴 볼커의 실수'가 한국에서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 다시 물가가 뛰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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