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에 미국 정부는 유선전화 시장의 9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던 AT&T를 7개 지역사업자로 분할하고, 장비제조 자회사 웨스턴일렉트릭은 다른 통신회사에 장비 판매를 제한하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AT&T는 시내전화, 시외전화, 통신장비 생산을 모두 거느린 통신공룡이었는데 AT&T의 수직결합 모델이 독점력을 키우고 있어 이를 해소해야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었다. 통신산업의 원조인 미국의 경쟁정책은 1980년대 후반 통신시장 경쟁체제를 추진하던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에 경쟁정책 교과서 격이었다. 수직결합 모델의 AT&T를 분할하는 과정과 정책의 효과에 대해 세계 주요 국가들이 연구와 자국 적용방법을 찾느라 혈안이었다. 우리나라도 1986년부터 미국의 통신정책을 연구하고 경쟁정책을 하나씩 세워가기 시작했다.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은 30년 전 통신정책 얘기가 최근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재벌집 이혼사건에 당시 통신정책이 거론되면서다. 남의 집 안타까운 가정사를 온 국민이 들여다보는 게 면구스럽다는 생각에 굳이 들여다보지 않겠다 했었다. 그런데 법원 판결이 당시 통신정책을 소환했다 해서 눈길이 간다. 법원은 1991년 체신부가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삼성, 현대, 대우, LG 등 4대 그룹이 제2이동통신 사업에 10% 이상 지분을 소유하거나 대주주가 될 수 없도록 한 조항이 특혜라고 짚었단다. 당시 대통령이 사돈기업 SK에 유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여줬다는 말이다.
말의 '아'와 '어'는 이렇게 다른 결론을 내는구나 싶다.
4대 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제한이라고 하니 어쩐지 기울어진 운동장의 느낌이 뒤따른다. 그런데 정확한 통신정책의 핵심은 통신장비 제조업체의 이동통신 사업 제한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가 개발한 전전자교환기를 4대 그룹이 생산했으니, 4대 그룹이 당시 국내 통신장비 제조사 전부다. AT&T처럼 장비 제조사가 통신서비스 사업을 수직결합하면 경쟁이 제한된다고 판결한 미국 정부의 판단을 전기통신사업법에 담은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통신당국은 장비 수출을 위한 정책을 우선순위에 뒀다. 통신서비스는 내수산업이고, 장비는 수출산업이니 장비산업을 키우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전전자교환기 생산을 해외시장 개척 능력이 있는 4대 그룹에 맡기고 당시 유일한 시내전화회사 KT가 4개사의 교환기를 비슷한 비율로 구입하게 한다. KT에서의 필드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교환기를 해외 통신사업자에게 수출하라는 것이다. 이동통신 역시 같은 구조를 짰다. 장비 제조회사가 특정 이동통신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면, 해외의 통신회사는 경쟁 소지가 있는 장비업체의 장비를 구입하지 않게 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4대 그룹 이동통신 진입 제한 정책을 특정인을 위해 운동장을 기울인 꼼수로 폄훼하면 안 된다. 오히려 통신장비와 서비스의 수직결합을 막고, 이동통신 장비 수출 확대를 위한 목표를 중립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어떤 권력자가 정책을 결정하면서 특정 기업을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실제로 마음이 작동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통신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의 기록과 당시의 시장상황 기록 등 남겨진 사실을 기준으로 보면 1990년대의 통신정책은 재벌집 이혼판결에 소환돼 '의문의 1패'를 당하기에는 억울하다.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상황적 추론보다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