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허락할 때까지 작업하고, 세계 각국을 다니며 전시하며 퍼포먼스도 하고 싶습니다."
사고로 팔을 잃은 아픔을 이겨낸 '의수 화가' 석창우 화백(69)은 20일 "예술가는 힘이 들어도 피곤해도 본인이 하는 행위가 즐거워야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42년 전 2만2900V 전기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으나 그간 국내외 개인전 46회, 해외 등 그룹전 300여회, 2014 소치·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 등 퍼포먼스 200여회를 치러내는 굵직한 성과를 이뤘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주재로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배우자 오찬 행사에 초청돼 검정·빨강·초록·노랑·파랑의 범아프리카 색으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표현했다. 양팔은 없지만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며 최고의 경지에 이른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화백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은?
▲대학(명지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나는 그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았다. 1984년 10월 전기관리자로 근무하던 회사에서 전기 점검 중에 전압에 감전되고 나서 양손이 절단되고 왼쪽 발가락 두 개를 절단한 장애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이후 어린 아들이 제게 와서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해서 의수 갈고리에 볼펜을 끼워 참새 한 마리를 하루 종일 그려 완성하니 아들이 매우 좋아했다. 이 광경을 본 처형과 아내가 그림을 배워보라고 권해 서화가인 여태명 선생을 찾아가게 됐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
―화가로서 자신만의 신념, 원칙이 있나.
▲되도록 제가 작업하는 것을 남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 혼자 하려고 노력한다. 서예할 때도 가족들이 먹 갈아 주는 것이 부담돼 발로 간 일도 있다. 양 손이 없어 제가 하지 못하는 것 외에는 도움을 받지 않는다.
―세상에 알려졌듯이 불의의 사고를 입었는데, 극복한 계기가 있었나.
▲제게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배우자가 있어 마음의 안정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했다. 기왕에 사고가 난 것이면 다른 직원이 사고가 나지 않고 차라리 내가 사고가 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의수를 착용할 수 있게 된 것에도 감사할 수 있었다.
―화가로서 본인이 추구하는 작품은.
▲몸에 장애가 생겼지만 내면에는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의 예술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육체를 도구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그런 가운데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즉,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흔적들이 석창우가 추구하는 예술이다.
―본인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미셸콴 선수의 경기 모습을 보고 그의 동적이고 자연스러운 동작에 반해 그린 작품이나 선수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표현한 쇼트트렉 장면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광명 돔경륜장에서 개인전을 하다가 경륜 경기를 구경하게 됐는데, 측면 포즈가 아닌 선수들의 뒤 포즈가 마음에 닿아 표현한 작품들도 대표작으로 꼽고 싶다.
―예술가가 되려는 어린 친구들에게 한 말씀 주신다면.
▲조물주는 인간들에게 아주 잘 할 수 있는 달란트(타고난 자질)를 주신다. 어린 친구들은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공부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거기에 집중해야 자기만의 예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주로 영감을 얻는 루트는?
▲작품 소재가 사람이라 사람의 동작에서 영감을 얻는다. 초기에는 누드 크로키를 주로 그렸고, 그 후에는 스포츠 선수들의 동작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지금은 인간의 모든 움직임, 무용, 연극, 영화 등 사람들의 행동이 제가 영감을 얻는 루트다.
―예술가는 세상에 어떤 존재인가.
▲예술가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비록 각자 추구는 것은 다르지만 꼭 세상에 어떠한 존재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예술 활동 자체가 본인을 즐겁게 하고, 그 부산물로 파생되는 작품들이 다른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존재여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넓은 공간을 가지고 싶지만 대부분 경제적인 사정으로 좁은 장소에서 작업을 한다. 학생들이 없어 남아도는 교실을 작업 공간, 공연 공간, 전시 공간으로 활용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큰 기업들이 스포츠단을 운영하듯이 하나의 기업이 한 명의 예술가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