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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의 외교포커스] '아시아판 나토' 가능한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20 18:23

수정 2024.06.20 18:30

동중국해·대만·남중국해
中 공세적 팽창정책 가속
反中 안보협력체 가능성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미국이 중국을 염두에 둔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화한 2017년 이래 미국은 아시아 지역의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 복수의 소다자 협의체들을 착실히 만들어 왔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일본·호주 및 인도 4자 협의체인 쿼드(Quad), 미국·영국 및 호주 3자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출범한 한미일 3자 협력체제 그리고 가장 최근에 형성된 미국·호주·일본·필리핀 4자 안보협력체인 일명 '스쿼드(Squad)' 등 촘촘한 안보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형성한 한 바큇살 모양(hub-and-spoke)의 안보협력 체제가 복수의 소다자 협의체가 중첩되는 격자모양(lattice)의 안보 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단일한 집단안보기구를 만들지 않고 이렇게 복잡하고 중첩적인 소다자 협의체들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동맹국들을 규합할 공동의 적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나토는 냉전 시기 소련이라는 명확한 공동의 적을 대상으로 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집단안보기구이다. 나토 조약 5조는 누구 하나라도 공격을 받으면 이를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나토는 집단안보의 가장 제도화된 형태이다.
공동의 적에 대한 위협 인식, 회원국 간 안보정책의 면밀한 조율, 고도의 정보공유 메커니즘을 전제로 한다. 한마디로 나토와 같은 집단 안보기구는 공동의 적이 있어야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의 동맹이다.

동중국해, 대만, 남중국해 그리고 히말라야 지역에서 공세적 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안보위협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이 서로 간의 안보적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나토와 같이 하나의 동맹 체제로 똘똘 뭉치게 할 정도는 아직 아니다.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일본과 동맹 수준으로 안보협력을 제도화하려는 입장은 아니다.

또 호주는 우리의 든든한 우방이지만 호주가 한반도 안보를 위해 우리와 동맹을 맺고자 하지는 않는다. 특히 지금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서 미국 인태전략에서 키를 쥐고 있는 인도는 어떤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의 인태지역 소다자 협의체 구축 전략은 나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다양한 소다자 협의체들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배타적 소그룹'이라고 비판하면서 중국 봉쇄를 위한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기 위한 미국의 획책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진정한 목적은 '소집단을 융합해 아시아태평양판 나토라는 대집단을 만들어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이라는 게 중국의 인식이다.

중국이 나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미국 중심의 각종 소다자 협의체들을 아시아판 나토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이 협의체들이 향후 단일한 반중 안보협의체로 전환될 가능성을 극히 우려한다. 아시아에서 반중 안보동맹은 중국에는 최악의 악몽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및 인태지역에서 중국의 안보적 위협에 대한 경계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자신의 앞바다에서 압도적인 힘을 가진 중국에 물대포 등 연일 물리적 핍박과 강압을 당하고 있는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지난 미일필 정상회의에서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중국에 대한 안보인식에 공감을 표시하고 향후 미국, 일본, 호주와 안보협력 강화에 합의한 바 있다.

지금 남중국해 공세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국의 점증하는 안보위협으로 인해 향후 아시아에서 반중 안보협력체의 출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결국 중국에는 '악몽'인 아시아판 나토의 현실화는 다른 누구도 아닌 중국의 손에 달려 있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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