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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츠업실리콘밸리] 대만을 다시 본다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25 18:24

수정 2024.06.25 19:15

홍창기 실리콘밸리특파원
홍창기 실리콘밸리특파원
국제 외교무대에서 대만은 늘 약자다. 중국에 늘 끌려다닌다. 대만과 국교를 맺은 국가는 교황청을 비롯해 단 12개국뿐이다. 대만과 수교를 하고 싶어도 대국인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탓이다. 잊을 만하면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회자된다. 그런 시나리오가 나올 때마다 대만은 저평가된다.
중국 때문에 늘 흔들리는 국가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최근 국제 무대에서 대만 기업과 경제의 위상은 외교 분야와 다르다. 대만 경제는 1980년대 우리나라와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을 정도로 전통의 강자다. 전통의 강자였던 대만 경제는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어마어마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대만 정부에 따르면 대만 서버와 저장설비, 파운드리, 집적회로(IC) 패키징·테스트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각각 90%, 65%, 53%다. 이 3개의 산업은 IC 설계와 전자 부품 등 나머지 3개 산업과 더불어 대만 경제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대시키는 일등공신이다.

특히 TSMC를 중심으로 하는 대만 기업의 기세는 대만 경제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TSMC는 올해 1·4분기 말을 기준으로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점유율이 60%를 넘는 반도체 기업이다. 대한민국이 대만을 잠시 잊은 사이 TSMC는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의 반도체 생산자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최근에는 AI 붐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엔비디아의 AI 칩을 독점생산하고 있다. TSMC는 대한민국 경제의 부동의 에이스 기업에 애플과 더불어 좌절감을 안기는 유이한 기업이다. 우리 국민에게 애증의 기업이다. 이런 TSMC의 위상을 한국에서는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TSMC의 일거수일투족이 미국 정부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만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도 마찬가지다. 폭스콘은 미국의 자존심 애플의 전 세계 아이폰 생산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TSMC만큼이나 미국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이런 폭스콘의 영향력은 최근 미국뿐 아니라 인도까지 확장됐다. 인도 정부는 올해 초 폭스콘의 류양웨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최고 훈장 중 하나인 '파드마 부샨'을 수여했다. 차이나리스크로 어려움을 겪는 폭스콘에 더 많은 인도 투자유치를 위한 외교적 수사인 셈이다.

젠슨 황의 엔비디아도 대만 경제를 이끄는 또 다른 공신이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엔비디아는 분명한 미국 기업이다. 그렇지만 대만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이중국적자 젠슨 황 CEO는 대만에 애정을 듬뿍 쏟고 있다. 대만을 수시로 방문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만을 방문할 때 황뤈신이라는 이름을 쓴다. 세계 지도에서 대만을 독립적인 국가로 표시한다. 이에 중국 정부는 항의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대만을 전 세계 최고의 AI 선도국가로 만드는 데 아주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의 AI 연구개발(R&D)센터를 추가로 대만에 설립할 계획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이 엔비디아의 대만 AI R&D센터는 대만 기업 폭스콘이 짓는다.

황 CEO는 이달 초 대만에서 열린 정보기술(IT) 박람회 컴퓨텍스에 참석, "대만에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이어 "대만이 계속해서 전 세계 과학기술 산업의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덕담했다. 장관급인 류징칭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주임위원은 "대만을 경제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화답했다. 궈즈후이 신임 경제부장(장관) 또한 "대만이 AI 칩과 서버로 향후 50년간 먹고살 수 있다"고 자신했다.


황 CEO의 덕담과 대만 정부 경제관료들의 발언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대만을 그리고 대만 기업을 다시 봐야만 한다.
이곳 실리콘밸리, 미국에서 보이는 대만과 대만 기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theveryfirst@fnnews.com 홍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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