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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히트플레이션' 성장에 복병될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25 18:29

수정 2024.06.25 18:55

2100년까지 GDP 18% 줄일 수도
농산물 신품종 개발 적극 나서야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18일 오후 대구 수성구 수성패밀리파크를 찾은 시민들이 쿨링포그가 가동된 그늘 쉼터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뉴스1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18일 오후 대구 수성구 수성패밀리파크를 찾은 시민들이 쿨링포그가 가동된 그늘 쉼터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뉴스1
때 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농산물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폭염이 전방위적 물가상승으로 번지는, 이른바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뒷북 대응에 급급할 경우 정부가 사력을 다하고 있는 2%대 물가안정도 언감생심일 수 있다. 나아가 이상기후는 물가뿐 아니라 일자리와 성장까지 위협할 수 있는 문제다.

들썩이는 채소·과일 가격에 서민들의 시름이 깊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4일 시금치(4㎏) 도매가격은 한달 새 86%나 올랐고, 청상추(1㎏)는 180%나 급등했다.
대파(4㎏)도 50% 상승했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국민과일 사과가 60% 올랐고, 전년 대비로는 120%나 뛰었다. 배 값도 1년 전과 비교하면 200% 넘게 올랐다고 한다.

과일 값 급등은 지난해 비축해둔 물량이 소진된 영향도 있다. 하지만 폭염으로 작황이 나빠져 수확량이 줄어든 탓도 크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달 20일까지 기록된 폭염일수는 평년 6월 한달 폭염일수의 4배에 이른다. 더욱이 이 역대급 초여름 폭염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예측이 많다. 폭염이 길어지면 공급량 급감, 물가급등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 지난해 치렀던 금사과, 금배 파동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른 폭염으로 인한 작물피해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그래서 더 힘겨울 수 있다. 가나, 나이지리아 등 코코아를 많이 생산하는 서아프리카는 최근 극심한 가뭄과 폭염에 시달린 대표적인 지역이다. 코코아를 원료로 한 초콜릿 가격이 급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업체는 초콜릿이 포함된 제품 값을 10% 넘게 올렸다. 올리브유 등의 원료 수급도 불안하다고 한다.

폭염은 정상제품 운송에도 타격을 입힌다. 멀쩡했던 수확물이 이송 중 폭염 때문에 시들고 부패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운송비가 오르고, 농산물 가격도 치솟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기온이 1도 오르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이 0.4~0.5%p 높아지고, 그 영향은 6개월가량 지속될 것이라는 보고서까지 냈다. 물가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히트플레이션까지 덮치면 물가안정은 그만큼 더 멀어진다.

폭염이 생산성 저하 등 경제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도 주시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폭염으로 2030년까지 매년 전 세계 총노동시간의 2% 이상이 손실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ILO는 농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대략 8000만명의 정규직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배송업무 제한, 온열질환 민감군의 작업 규제 등의 영향을 감안한 분석이다.

폭염으로 인해 2100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2020년 대비 18%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폭염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고용은 물론 성장까지 가로막는 복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폭염 등 이상기후에 따른 피해를 줄일 중장기 전략과 종합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농산물 경쟁력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신품종 개발에 적극 나서고 수급예측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도매법인 등 중간상인만 이익을 보는 농산물 유통구조는 고질적인 병폐다. 지난해 금사과 파동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바로잡지 못하면 농가와 소비자 모두 고통을 받는다. 무더운 환경에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지 않게 탄력적인 근로를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동 법규도 맞춰서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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