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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의 경제산책] 아데나워의 결단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27 18:19

수정 2024.06.27 19:11

反共 자유민주주의 수용
사회적 시장경제의 정착
獨 '라인강 기적' 이끌어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콘라트 아데나워는 2차대전 이후 독일의 초대 총리로서 전후 독일의 부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의 리더십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독일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현대 독일의 번영과 안정에는 아데나워 외에도 역대 총리들의 주요 결정이 절대적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추진, 헬무트 콜의 고르바초프 등 소련 지도층 설득에 의한 독일 통일 달성,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하르츠 개혁 등은 모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사건이었으며 지도자들의 중대한 결단에 의한 것이라 하겠다(슈뢰더는 다음 선거의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아데나워는 사실 소속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제2당), 자민당 등 타당과의 연정에 의해 어렵사리 최초 집권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비전으로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부흥과 민주주의 정착을 이끌고 14년간 집권을 하게 된다.


그의 많은 업적 중 첫번째로 꼽아야 할 것은 반공을 내세운 자유민주주의의 수용이라 하겠다. 나치 정권하의 민주주의 훼손을 넘어서고, 현실적 위협이었던 스탈린 치하 소련과의 대결을 불사한 것은 아데나워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 의한 것이다. 물론 그의 이러한 선택은 단순히 신념에만 기초한 것은 아니고 현실적인 제약을 감안한 것이다. 어차피 국토의 4분의 1 가까이가 소련 블록으로 편입된 상황에서 서부독일이 적극적으로 미국(영국·프랑스와 아울러) 주도 체제에 편입하지 못한다면 독일의 미래는 없다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과 노선은 이른바 '스탈린 노트'로 불리는 1952년의 '중립화 통일제안'을 단호히 거절한 데서 좀 더 확실하게 나타난다. 소련의 제안은 독일의 중립화 통일을 허용하는 대신 미군이 독일 영토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데나워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당시의 동구권에서 일어났던 바와 같이 소련의 위성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본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몰리기도 했지만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켰다.

아데나워의 두번째 중요한 결단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정착이다. 나치 시절 시장경제의 외양은 갖추었지만 국가 사회주의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국가의 계획과 개입이 많았던 경제체질을 전면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스탈린식 계획경제의 미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인데 지금 돌아보면 당연한 듯하지만 그 당시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혜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도 미국식의 완전한 자유주의 경제보다는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적극적 정부개입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요체이다. 즉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는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지출을 과감히 확대하고 노동조합의 경영권 일부 참여 등을 허용한 것이 그 대표적인 조치들이다. 이는 발터 오이켄 등이 주창한 '질서 자유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독일 사회는 현재까지도 일종의 계급사회적 전통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10세 정도가 되면 향후 대학 진학까지 해서 전문직으로 가게 될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직으로 가게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노동계층으로 편입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체제에서 노동계층이 상대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야만 사회적 통합에 지장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아데나워도 후임 에르하르트 총리 결정 과정의 석연치 않은 처신 등으로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가 후일 통일로 이어지는 번영을 가능케 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데, 비슷한 시절 우리나라 이승만 대통령을 생각나게 한다.
어느 국가든 처음 기틀을 마련할 때 지도자의 역할은 그만큼 더 중요하다 하겠다.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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