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 보좌관 칼럼
[파이낸셜뉴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등재 문제. 몇 차례 글로 썼지만, 귀에 못이 박히게 되풀이해도 모자란 주제다. 우려스러운 점은, 게임 이용자들에게 이 이슈가 점점 만성화되고 있는 듯 하다, 내성이 생긴 듯한 분위기가 쌓여가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먼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당장 내년 3월에 게임이 질병으로 등재된 코드 초안(제9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안, KCD-9)이 나온다. 그동안 잠잠했던 정신의학계도 게임 질병화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가 공영방송에 출연해 살인사건의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린다. 이미 물릴대로 물린 억지주장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효과가 좋다는 뜻이다. 이래서인지 시간은 가는데, 초조함만 쌓인다. 불안을 더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다.
지난 3월 초 세계보건기구에서는 'ICD-11내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에 대한 진단 가이드', 통칭 CDDR을 발표했다. 다시 말해 제11차 국제질병분류 개정안에 포함돼 있는 정신·행동·신경발달 분야의 장애 및 질병들은 어떤 증상이 있고 질병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을 삼아야 할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엔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증상의 주요 특징과 진단 기준도 자세히 쓰여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특정 질병을 코드로 신규 등재할 경우 보통 그 진단 가이드라인을 작성하여 배포하는데, 이번 CDDR 발표는 그 일환이다. 더불어 CDDR에는 발간에 임상 연구, 자문, 재정 지원 등 여러 도움을 제공한 국가와 단체, 인물이 기록된다. 음악 앨범에서 흔히 보이는 '땡스투(Thanks to-)' 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이번 CDDR 감사 리스트에 놀라운 이름이 보였다. 게임을 질병화하는데 선봉부대로 활약 중인 정신의학계 학회와 이 모 교수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이들이 CDDR의 게임질병 증상과 진단기준안에 기여했을 것이란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들의 지원사격 덕분인지 CDDR에는 게임 질병 관련 논리가 과거 대비 대폭 보강됐다. 예컨대 그간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했던 '게임 중독'의 기준을 자세히 명시하고 있고 다른 중독과의 연관 발현 가능성, 공존장애 가능성, 과도한 게임중독 일반화와 중독자 낙인 가능성 기재 등이 그것이다. 그 내용들을 자세히 소개보고자 한다.
우선 CDDR에서는 온오프라인에서 지속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게임이용장애 진단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 증상의 주요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이 꼽고 있다.
첫째, 게임 플레이 빈도, 강도, 지속 시간, 종료에 있어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려워한다.
둘째, 게임이 생활 내 기타 관심사 및 일상 활동보다 우선하며 게임 행동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셋째, 부정적인 결과에도 게임 이용을 계속하거나 오히려 더 열심히 게임 플레이를 한다. (예시: 게임 플레이로 인한 가족 갈등, 학업 및 성적 저하, 건강 악화)
넷째, 게임 행동의 패턴은 연속적이거나 일시적이고 반복적일 수 있으나, 장기간(12개월)에 걸쳐 나타난다.
다섯째, 게임 행동은 조울증과 같은 다른 정신 질환에 의해 더 잘 설명되지 않으며 물질이나 약물의 영향에 의한 것도 아니다.
여섯째, 게임 행동의 패턴은 개인적, 가족적, 사회적, 교육적, 직업적 또는 기타 중요한 기능의 영역에서 심각한 고통 또는 손상을 초래한다.
CDDR은 게임이용장애의 추가적인 임상 특징도 별도로 제시하고 있다. 이 특징을 보일 경우, 즉 게임 행동의 증상과 결과가 심각하고 다른 몇몇 조건에 부합한다면 그 기간이 12개월보다 짧아도 게임이용장애를 겪고 있다고 질병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다음은 CDDR피셜 '게임 중독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유형이다.
첫째, 게임이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게임 행동을 통제하거나 대폭 줄이기 위한 수많은 노력과 실패를 거칠 수 있다.
둘째, 게임이용장애를 가진 사람은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시간이 지날수록 자극을 높이거나 적어도 수준은 유지하기 위하여 게임 플레이 타임과 빈도를 늘리거나 지금보다 복잡 혹은 고도화된 기술과 전략을 요구하는 게임을 시도할 수 있다.
셋째, 게임이용장애를 가진 사람은 일상 속 다른 활동 중에 종종 게임에 참여하고 싶은 충동이나 갈망을 경험한다.
넷째, 게임플레이를 중단하거나 줄일 경우, 게임이용장애를 가진 사람은 불쾌감을 느끼고 적대적인 행동이나 언어적, 또는 신체적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
다섯째, 게임이용장애를 가진 사람은 신체나 정신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식단, 수면, 운동 및 기타 건강 관련 행동에서 상당한 장애를 나타낼 수 있다.
여섯째, 복잡한 작업의 수행을 위한 여러 사용자 간의 조정을 수반하는 온라인 컴퓨터 게임을 이용할 경우 게임을 과도하게 플레이하기 쉽다. 이러한 경우,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가 게임 플레이를 장시간으로 하는지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 아울러 과잉 게임 플레이가 사회에 끼치는 긍·부정적 영향과 별개로 모든 진단 기준이 충족되기만 한다면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일곱째, 게임이용장애는 일반적으로 불안 및 공포 관련 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강박 장애 및 수면 각성 장애와 함께 발생한다.
여기까지 CDDR의 기준을 본 감상이 궁금하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공감가지 않는다 수준을 넘어 어처구니가 없다. '종종 일상 속 다른 활동 중에 게임에 참여하고 싶은 충동'이 없는 게이머가 과연 있을까. 당장 필자도 여기에 속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본능을 질병으로 분류한 CDDR, 여기에 수긍할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이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 내용들이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다음 글에서 설명을 이어가겠다.
/정리
soup@fnnews.com 임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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