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세곳중 한곳 물막이판 없다... 반지하촌은 다시 침수 공포 [기후위기 시대 재난경보 켜진 대한민국(1)]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7.01 18:48

수정 2024.07.01 18:48

2년 전 8월 서울 덮친 폭우로
신림동 일가족 3명 숨진 이후
정부·시 쏟아낸 대책 '공염불'
방지시설 설치된 곳 65% 그쳐
집주인들 "집값 떨어져" 반대
장마철 앞두고 주민들 불안감
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 주택 입구 좌우측에 물막이판 거치대가 설치돼 있다. 이 곳에서 지난 2022년 8월 8일 집중 호우에 따른 침수사고로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사진=김동규 기자
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 주택 입구 좌우측에 물막이판 거치대가 설치돼 있다. 이 곳에서 지난 2022년 8월 8일 집중 호우에 따른 침수사고로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사진=김동규 기자
기후변화로 인해 강우량이 급증하고 폭염이 지속되면서 신종 재난이 되고 있다. 지난 2022년 8월엔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한 가족이 익사했고, 같은 시기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도 침수사태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듬해 7월인 충북 청주 궁평2 지하차도에서 갑작스러운 침수사고가 발생해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도 때이른 폭염으로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앗아갈 우려가 크다. 또한 본격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파이낸셜뉴스는 특별기획을 통해 재난에 취약한 대한민국의 현상황을 짚어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본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어요. 비가 많이 내리면 반지하는 또 잠기겠죠."

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다세대주택에서 만난 A씨의 말에서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A씨가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은 지난 2022년 8월 8일 집중호우로 반지하가 물에 잠겨 일가족 3명이 숨진 곳이다. 사고 이후 대통령까지 현장을 찾고 문제 해결을 성토한 바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침수피해 최소화, '반지하 퇴출'을 위한 대책을 잇달아 쏟아냈지만 주민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입구에 물막이판 거치대가 설치된 것이 전부"라고 토로했다.

■물막이판 설치됐지만 실효성 의문

물막이판은 지면과 맞닿은 반지하 주택 창문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는 기물이다. 서울시는 사망사고 이후 취약지역 곳곳에 물막이판 거치대를 설치하고 있다. 집중호우 시 거치대에 물막이판을 끼워 침수를 막기 위한 장치다.

기자가 사망 사고가 있었던 지역의 다세대주택 인근 반지하 9곳을 확인한 결과, 물막이판을 끼울 수 있도록 개선한 곳은 6곳에 불과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침수 방지시설이 필요한 반지하 2만3104가구 중 물막이판과 역류방지밸브 등을 설치한 곳은 전체의 65.4%인 1만5100가구다. 나머지 8004가구는 집주인의 반대 등을 이유로 지자체가 물막이판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인근 지역 공인중개사는 "물막이판 거치대가 보이면 '이 건물은 침수가 잘 되는 곳입니다'라고 세상에 광고하는 격"이라며 "집값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선 반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호우 시 물막이판을 관리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A씨는 "자치구에서 물막이판 거치대를 설치했지만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며 "여긴 아파트처럼 관리인력이 없기 때문에 폭우가 내리면 누군가가 물막이판을 창고에서 꺼내와 거치대에 끼워야만 한다. 제때 정보를 얻지 못해 대처를 못하면 침수사고를 막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지자체가 집중호우 시 배수 기능을 잘 관리해주길 바라고 있다. 2년 전 비극적 사망 사고도 원활하지 않은 하수구의 배수로 인해 비가 역류해 일어난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 차모씨(64)는 "지자체에서 배수 기능을 정비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당장 배수구를 청소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올해 갑자기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지난 2022년과 같은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해당 골목의 배수구에는 담배꽁초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배수구도 쓰레기더미로 둘러싸여 있었다.

■장마만 오면 불안한 주민들

다세대주택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친척집 등 대피할 장소를 찾아두거나 중요한 살림살이라도 건지기 위해 미리 챙기는 게 전부라고 한다.

서울 신림동에서 39년째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정모씨(65)도 "물난리가 나면 일단 옮길 수 있는 물건을 들고 높은 건물로 대피할 생각이지만 냉장고·가스레인지 등 쉽게 옮길 수 없는 물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뾰족한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불안감을 떨칠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박모씨(60)는 "돈이 부족해 반지하에 사는 것도 서러운데 비가 많이 온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긴다고 하면 더욱 서러운 일"이라며 "정부에서 특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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