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통일

40년 전에도 핵참화 운운한 北… 대북전단 던지며 욕설·난동

김윤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7.02 18:46

수정 2024.07.02 18:46

정부, 80년대 남북대화 사료 공개
1980년도 남북대화 사료 연합뉴스
1980년도 남북대화 사료 연합뉴스
"조선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 전쟁은 결코 조선경내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며 불피코 핵전쟁으로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선인민뿐아니라 미국인민들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며 전세계가 다 핵참화를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1984년 1월 24일 북한이 미국 정부와 의회에 보낸 우리나라까지 3자회담을 하자는 제의가 담긴 편지의 한 대목이다. 3자회담은 북한이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로 궁지에 몰리자 내놓은 출구전략인데, 이를 제의하면서도 '핵참화'를 언급하며 협박한 것이다. 이후 이뤄진 남북간 체육회담에서도 북한은 아웅산 테러가 자작극이라는 거짓말을 하며 적반하장 태도를 고집했다.

이는 통일부가 2일 일반에 공개한 남북회담문서에 담긴 내용이다.
이날 공개된 사료는 1981년 1월부터 1987년 5월까지 이뤄진 남북회담문서 1693쪽이다. 직전 남북회담 사료 공개 때 북한이 1980년 총리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대표 접촉에서 일방적으로 대화 제의를 쳐낸 상황이 드러났다. 그러다 1983년 아웅산 테러로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으며 핀치에 몰리자 3자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아웅산 테러를 직접 거론하지도 않고 오히려 핵협박을 담은 편지로는 당연하게도 3자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러자 북한은 1984년 7월 미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불과 몇 달 앞두고 돌연 남북 단일팀 파견 논의를 제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4년 4월 9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체육회담이 열렸지만, 남북은 욕설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부딪혔다. 우리 측에선 시작하자마자 아웅산 테러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고, 북측은 '남측 자작극'이라는 거짓주장을 되풀이했다. 북측에선 판문점 일대에 뿌려진 대북전단을 들고 와 남측 대표에게 던지며 "이거 보라"며 고성을 질렀고, 남측도 "우리 쪽에도 대남전단이 많다"고 맞서며 전단을 내던졌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남측 대표는 "귀측의 부자세습왕조 구축과 우상화는 자유세계는 물론 심지어 공산권 내부에서까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북측은 "광주에서 수만명에 이르는 동족을 살해했다"며 5·18광주민주화운동 민간인 학살을 비판했다. 이후 양측 간에 욕설이 난무하고 북측은 성냥갑을 던지는 등 난동으로 이어지며 회담장은 난장판이 됐다.
결국 북한은 아웅산 테러로 인한 위기 타개에 실패하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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