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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균의 에브리싱] 북중러의 신밀월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7.03 18:24

수정 2024.07.04 18:10

3국 맞닿은 연해주 꿈틀
북러, 중러 계산된 밀착
한국은 두 눈 부릅떠야
정상균 논설위원
정상균 논설위원
러시아 연해주 주도(州都)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이다. 러시아 극동의 군사·물류 요충지다. 사할린 천연가스, 아무르주 수력발전 등 에너지 기착지다. 유라시아를 잇는 9200㎞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구부린 손가락 모양의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은 이질적이다. 곡물과 수산물, 광물 등을 실은 상선과 대형 여객선, 극동 태평양함대가 한데 모여있다.


북극항로와도 닿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으로 50여㎞ 떨어진 곳이 국경도시 하산이다. 두만강을 넘으면 북한이다. 북러는 철길만 놓여 있다. 하산으로 가는 길은 드넓은 평지와 숲, 적막하다. 절반쯤 왔을 때 닿는 작은 마을이 크라스키노, 한인 정착지가 있던 옛 연추(延秋)다. 야트막한 봉우리에 오르면 일본군과 벌인 하산전투(1938년) 승전기념탑이 있다. 사방이 트여있어 남서쪽으론 중국 훈춘과 북한이 어렴풋이 보인다. 훈춘에서 이어진 철길에는 화물열차가 다닌다. 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1909년 겨울 안중근 의사가 11명의 동지와 단지동맹을 결행한 너른 평지가 나온다. '한반도 호랑이'의 오른발 발톱에 맞닿아 있는 연해주는 발해, 고구려의 땅이었다. 청나라 땅이었다가 러시아의 땅(1860년 베이징조약)이 됐다.

2018년 이곳을 가봤다. 6년 전 그때,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여객기와 유람선을 타고 온 한국 관광객들이 넘쳤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포옹했다. 열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럽까지 가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기대도 했다. 아뿔싸.

3국의 국경이 맞닿는 연해주, 이 침묵의 땅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그런데 평화를 그렸던 우리의 기대가 보기 좋게 빗나간 쪽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달 평양에서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맺어 관계를 격상했다. 북러는 수년째 중단된 하산-나진 두만강 도로 교량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북한 나선을 오가는 여객열차도 운행을 재개한다. 북러 교역 확장을 넘어, 폐기됐던 유사시 군사개입이 명시된 조약까지 되살렸다. 북한은 러시아에 재래식무기, 폭탄을 대거 공급하고 있다는 게 서방의 분석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 핵추진잠수함, 정찰위성 등과 같은 위협적인 군사기술 교류는 레드라인을 넘은 중대한 문제다.

중러도 더없는 밀착 관계다. 수교 75주년, 푸틴은 지난 5월 경제사절단과 함께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러시아 영토에서 중국 자동차를 생산하자고 했다. 중러는 천연가스파이프(PNG), 철도 등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러시아 극동을 오간 철도 화물량(1470만t)이 지난해 25% 늘었다고 한다. 중국 입장에선 동북 3성 공업지대 생산품을 실어내기 위해 태평양 관문을 열어야 한다. 그곳이 연해주다. 훈춘과 연해주를 잇는 고속도로를 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북중러의 급격한 밀월은 철저한 이해타산에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한국은 놓칠 수 없는 파트너다. 연해주 산업단지에 한국 기업 투자를 희망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 극동 최대 조선기지를 세우려는 계획에 한국의 조선기술이 필요하다. 북극항로로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쇄빙선도 한국 조선소가 만들었다. 액화천연가스(LNG)는 물론 곡물, 수산물 등의 중요한 수출시장도 한국이다.

패권국은 자국 이익을 우선한다. 맹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우린 10위권 경제대국이다. 경제력이 외교의 힘이다. 외교는 협상이다. 국방은 실체다. 군비 지출 세계 2, 3위가 중국, 러시아다. 한반도의 안보 지각판이 크게 이동하고 있다. 그 방향이 동북아 신냉전 고착일지 계산된 이합집산일지 모를 일이다.
목하 밀월 중인 북중러를 상대해 치밀한 외교력, 협상력이 요구된다. '우크라이나 무기 직접 지원'과 같은 강경카드는 이행하기 전에 힘이 더 세다.
먹이를 노려보는 범과 같이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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