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1억원, 아이 낳을래요? 결혼할래요?" [쓸만한 이슈]

김주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7.08 06:00

수정 2024.07.08 06:00

합계출산율 0.72에 악소리 낸 '출생대책'
"그런데, 나라 망한다고 애 낳겠습니까?"
청년들의 답은 "경쟁사회부터 바꾸세요"
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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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싱글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습니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지만, 건실한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가정을 꾸릴 생각은 크게 들지 않습니다. 고물가·고금리에 혼자 살기도 벅차고 힘든데, 언제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 낳아 육아까지 하겠습니까.

"혼자가 편합니다"
"1억원 드릴게요"…파격정책 부영 공채에 2030세대 몰렸다네요

美 캘리포니아주립대 법대 명예교수도 '망했다'는 대한민국의 출생률, 처참한 상황이니만큼 주요 기업들도 저출생 대책마련에 나섰는데요. 선두주자는 부영그룹이었습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지난 2월 2021년 이후 태어난 자녀를 둔 직원들에게 자녀당 현금 1억원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출생 장려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실제로 해당되는 직원들에게 총 70억원을 지급하기도 했지요.

이에 GS건설·삼성전자·SK온 등의 기업들도 앞다퉈 나섰습니다. 각 기업들은 출산 휴가 연장, 출산장려금 지급, 자녀 보육지원비 지원 등 대책을 마련하며 출산 장려를 통해 사회적 보탬이 되겠다 선언했습니다.

효과는?

부영그룹의 경우 지난 6월 실시한 직원 공개채용에 2017년 대비 5배 이상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고 하네요. 특히 경력사원 모집에 2030세대 지원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게 부영 측의 설명입니다.

"1억원 주면 아이 낳겠습니까"…63% "동기부여 된다" 응답

부영이 쏘아올린 '1억원', 효과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지난 4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정책 소통 플랫폼 '국민생각함'을 통해 '아이를 낳은 국민에게 출산·양육지원금으로 1억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대국민 설문을 진행했는데요. 응답자의 63%가 '동기부여가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네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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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또한 '아이 낳는 대한민국'을 위해 발벗고 나섰습니다. 시는 지난 6월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 사업을 개선해 혜택을 대폭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서울에 거주하는 무주택 신혼부부가 시와 협약을 맺은 국민·신한·하나은행에서 임차보증금을 대출 받고 시가 해당 대출 이자 일부를 지원해 주는 사업입니다.

또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9일 저출산 대책 일환으로 신생아 특례대출의 부부 합산 소득 요건을 내년 1월 1일부터 3년간 2억5000만원으로 확대하기도 했는데요. 현재는 연 소득 1억3000만원 이하 가구만 신청이 가능하지만 올 3분기부터 2억원 이하로 완화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국가가 국민들에게 '아이 낳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수준이네요.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합니다.
아이 안 낳는 대한민국 '젊은 사람들', 오로지 '돈'이 문제일까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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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요? 됐어요, 혼자가 편해요"..결혼=행복 공식 깨졌다는 청년세대

지난 6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청년세대 혼인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에 81.5%(784만명)가 미혼으로 남자는 86.1%, 여자는 76.8%가 혼인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자는 2000년에 62.4%에서 2020년에 86.1%로, 여자는 2000년에 47.2%에서 2020년에 76.8%로 청년세대 미혼율이 증가했으며 남자보다 여자의 미혼 비율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요. 아이를 낳기 이전에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청년층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저출생·저출산 현상의 밑바탕엔 이른바 ‘MZ’로 불리는 세대 사이에 보편화된 ‘비혼’ 문화가 깔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결혼=행복, 비혼=불행'이라는 도식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건데요.

'혼술', '혼밥', 혼행' 등 '나홀로 소비' 트렌드가 대세를 이루는 것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삶'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사회발전보다는 자신만의 물질적 풍요를 중요시 여기는 출산연령 세대의 가치관이 저출생 문제로 이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질문을 바꿔보세요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대한민국 망했다'며 머리를 움켜쥔 조앤 윌리엄스 교수는 지난 6월 EBS 창사특집을 통해 "돈을 준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한국에서 야망 있게 일하면서 아이를 책임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과거의 노동 방식이 현재 한국 사회를 약화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일하는 방식의 혁명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지요.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현 출산 연령 세대는 1980년대~199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윌리엄스 교수의 말대로 이들의 부모는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로, 경제적으로는 고도 성장을 이루면서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기를 살아왔지만, 성장 과정에서 극도의 가난과 IMF 경제 위기 등 한국 경제의 주요 사건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물질주의적, 경쟁지상주의적 가치관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부모의 높은 교육열 때문에 치열한 입시 경쟁을 거쳤음에도 장기화된 불황으로 취업난을 겪은 이들은 또 극심한 경쟁과 스트레스를 감내하기도 했지요.

'초저출생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대한민국이 버려야 할 한가지'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경쟁'이라고 답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대입 시험과 내신 시험 모두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물론 정부도 기업도, 윌리엄스 교수와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변화를 주기 위한 나름의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구감소가 가져올 경제성장 둔화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는 노력 또한 필요한 시기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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