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가재정운용계획, 총액배분 자율편성 예산제도, 재정성과관리제도,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 등 4대 재정개혁을 통해 재정의 건전성과 국가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효율적 재정운용이 중시되었고 이러한 모범적인 성과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의 인정으로 이어지면서 시장과 정부가 힘을 합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했다. 그런데 최근 IMF 재정모니터링에서 재정운용방향 결정의 세가지 핵심요소로 국가의 정책목표, 부채의 지속가능성에 더해 세금부과와 지출에 있어서의 정치적 제약조건을 의미하는 정치적 타당성(political feasibility)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도 재정의 역할이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정치적 타당성에 대한 고려가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정치는 결국 데이비드 이스턴의 말대로 가치있는 자원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선거를 통해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예타면제 등을 통해 재정지원을 몰아주기도 하고 정치적 이념의 실천수단으로 재정을 이용하는 등 정책보다는 정무적 판단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재정의 정치화가 진전되면 부채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태로 늘어나 금융위기 위험이 가중되고 경제적 불안정과 성장둔화로 귀결된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진전에 따른 복지수요 증가, 코로나19 팬데믹 극복과정에서의 전례없는 막대한 재정지출 경험이 재정의 정치화를 가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빈번한 보편적 현금지급 등 지대추구적 유인이 강화되고 있어 재정위험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험성은 일찍이 제임스 뷰캐넌 등 공공선택학파에서 국가가 리바이어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갈파하고 시스템에 의한 운용, 그리고 포퓰리즘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를 선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리스 최대의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야에서 영웅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돛대에 자기 몸을 묶었던 것과 같은 이치로 그만큼 재정중독 위험이 크다는 이야기다.
최근의 상황은 재정전쟁이라는 말이 적절해 보인다. 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해야 하는 이유는 필요할 때, 그리고 써야 할 데 충분히 지출할 수 있는 재정여력(fiscal space)을 확보해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화전쟁, 화폐전쟁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재정전쟁이라는 말은 별로 쓰이지 않지만 앞으로 국가경쟁력은 재정의 힘이 좌우할 것이며 국가 간 경쟁을 위해서는 유능한 정부가 재정을 규칙에 기반해 운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최악의 복지정책은 적자재정이라고 한다. 국채발행을 늘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이자율이 상승하면 결국 약자층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당분간은 적자재정을 면하기 어렵겠지만 시스템을 만들고 이 한도 내에서 중장기적으로 재정을 유능하게 운용한다면 우리도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와 기준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재정의 지나친 정치화에 대한 국민들의 경계심이고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분모인 성장률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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