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고령 운전자, 면허 제한 논의에 "갱신 기준 높이면 될 일"…생업 위협 토로[현장]

뉴시스

입력 2024.07.09 16:19

수정 2024.07.09 16:19

"면허 빼앗아야 한다는 말은 사고 날 때마다 나와" 전문가 "개인 자유 침해하는 일…획일적 대책 안돼"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9일 오전 서울 노원구 도봉운전면허시험장에 면허 발급을 위해 방문한 고령 운전자들. 2024.07.09. creat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9일 오전 서울 노원구 도봉운전면허시험장에 면허 발급을 위해 방문한 고령 운전자들. 2024.07.09. creat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나이에 관계없이 면허 갱신 기준을 높여야 해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면허를 제한하는 게 말이 되나요."

9일 서울 노원구 도봉운전면허시험장에 만난 택시 기사 김모(75·남)씨는 사실상 고령자 운전을 제한하는 대책이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과 관련해 생업을 위협하는 과도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면허를 빼앗아야 한다는 말은 사고가 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라면서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면허갱신이나 적성검사 기준을 강화하는 편이 옳은 길 같다"고 말했다.

최근 '시청역 역주행 사고' '국립중앙의료원 택시 돌진 사고' 등 만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가 연이어 알려지며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제한하는 내용의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 사상자 16명이 발생한 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관련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관련 기사 댓글에는 "고령 기사 차에 타는 것이 불안하다" 등 비난 여론이 팽배하다.

하지만 고령 운전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30년 공직 생활 동안 수많은 운전을 경험한 베테랑 운전사다. 은퇴 후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그는 "운전 습관에 따라 실수하고 사고도 나는 것이다.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2~3년만 더 택시를 몰고 은퇴할 생각이라는 방모(75·남)씨는 젊은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에는 이목이 쏠리지 않지만 고령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크게 보도돼 부정적인 시각이 더해지는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방씨는 "젊은 운전자가 내는 교통사고도 많은데 매번 나이 든 사람만 운전대를 놓으라고 보도가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적성검사를 할 때에 신체검사 같은 단계를 성실히 거쳐야 한다"며 "내가 보기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영업용 택시를 할 때도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영업용 택시를 운행하지 못하도록 검사 단계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도로교통공단 '어르신 교통사고 Zero 캠페인'에서 어르신들이 고령운전자 표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고령운전자표지는 추후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법제화 될 예정이다. 2023.10.05.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도로교통공단 '어르신 교통사고 Zero 캠페인'에서 어르신들이 고령운전자 표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고령운전자표지는 추후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법제화 될 예정이다. 2023.10.05. myjs@newsis.com

이날 적성검사와 면허갱신으로 시험장을 찾은 택시 기사 대부분은 운전 능력 평가를 강화해 사전에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들은 고령화 시대에 나이만을 근거로 한 과도한 규제는 수용하기 어렵다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은 고위험 운전자 관리 방안으로 '조건부 면허 도입'을 발표했다. 고령자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특정 기준에 미달하면 야간·고속도로 운전 등을 제한한다는 취지로,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한한다"는 역풍에 '고령 운전자'를 '고위험'으로 수정한 후 계속 추진되고 있다.

조건부 면허제와 별도로 90% 이상의 합격률을 보여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운전 적격여부 검사(자격유지 검사) 기준을 엄격히 하는 방안도 국토부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들은 매년 정해진 검사를 받고 안전 운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사례가 크게 부각돼 고령 운전자를 향한 비판이 쏟아질 때면 사기가 떨어진다며 아쉬운 마음도 드러냈다.

면허증을 재발급하러 시험장을 찾은 박모(78·남)씨는 "고향이 전북 남원인데 갈 때마다 버스가 너무 적어서 다니기 불편했다. 그래서 운전면허를 살려뒀다"라며 "시력은 1.0이고, 청력도 정상이다. 건강검진에서 모두 정상으로 나왔는데 (운전하도록) 해줘도 되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실제 택시 기사 23만8093명 중 절반에 달하는 10만1655명(42%)이 65세 이상이다. 고령에도 생업을 위해 운수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일부 사고에 시선이 주목되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심적 부담이 된다고 토로한다.

이날 적성검사를 위해 면허시험장을 방문한 택시 운전기사 방씨는 "주위에서 들리는 얘기 들어보면 자기가 운전을 못할 정도가 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스스로 그만둔다"면서 "나도 75세지만 건강하면 운전을 해야 한다. 모아둔 돈도 없는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운전을 못하게 하면 안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강원지역 건물·구축물 해체 기업에 운수직으로 종사한다는 A씨는 "(운전을)안 하면 생업은 어떻게 하느냐. 병이 있는 게 아니라면 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령에 따른 면허증 반납은 이들의 생존권과 이동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현실을 감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면허 제한은 사실상 개인의 자유를 엄청나게 침해하는 일"이라면서 "고령자에 따라 다른 것인데 획일적인 대책을 쉽게 논의한다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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