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동인 작가가 1932년 발표한 ‘발가락이 닮았다’는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 M은 생식능력이 없는데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 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은 M은 의사에게 “발가락이 닮았다”고 말하자, M의 신체 비밀을 아는 의사는 “발가락뿐만 아니라 얼굴도 닮았다”고 답했다. 이는 유전의 자연과학을 뛰어넘는 휴머니즘이 숨 쉬는 대답이었다.
발가락이나 손가락과 같이 인체의 특징은 부모로부터 물려받게 되는데, 탈모 유전자가 손가락과 발가락의 형태에도 특별한 영향을 줄 수도 있을까.
호기심 많은 일부 의료인이 손가락 길이와 탈모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했다. 다섯 손가락 중 첫째가 엄지, 둘째가 검지, 셋째가 중지, 넷째가 약지, 다섯째가 소지라고 한다면, 연구결과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탈모 확률이 높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2023년 대만 가오슝의대 피부과 연구팀은 네 번째 손가락이 두 번째 손가락 보다 길수록 탈모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남성 노화(The Aging Male)’에 실었다. 연구팀은 평균 연령 37세인 탈모 남성 240명을 대상으로 오른손 검지와 약지 길이를 측정했다. 다른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손가락 이상자, 탈모 연관 전신 질환자, 최근 3개월 내 탈모 치료자, 모발 이식자는 제외했다.
조사 결과 오른손 약지가 검지보다 긴 남성은 중증 탈모 위험이 6배가량 높았다. 특히 안드로겐 탈모일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높아졌다. 가벼운 탈모는 검지와 약지 길이 차이가 적었다.
앞서 2017년 튀르키예 셀추크 대학의 메메트 위날 박사 연구팀도 같은 내용의 결과를 유럽 미용 피부과학회지(Journal of Cosmetic Dermatology)에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갓 태어난 남자아이의 손가락 길이에서 어른이 된 후의 탈모 가능성을 유추해 보았다. 약지가 검지 보다 길면 성장기 후에 모발 상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손가락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의 연관성으로 풀이할 수 있다. 태아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임신 7주차나 8주차부터 형성되어 분리되기 시작한다. 이 무렵 모낭도 발달한다. 손가락과 발가락 길이는 이 기간 급증하는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특히 네 번째 손가락이 남성호르몬에 민감하다. 때문에 네 번째 손가락 약지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으면 길어지고,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분비가 많으면 발달이 늦어진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모낭에서 5알파-환원효소와 결합하면 탈모 유발의 주범 호르몬으로 알려진 DHT(Dihydrotestosterone)로 환원된다. DHT로 인해 탈모가 발생되는데, 네 번째 손가락 길이가 길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팀들은 태아 시절 테스토스테론 노출이 많음에 따라 약지가 길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지나친 테스토스테론 생성이 모낭 수축을 불러와 모발 생장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약지와 테스토스테론 관계는 성적 매력과도 연관성이 있다. 스위스 제네바 대학 연구팀은 2011년 영국 왕립학과 생물학 저널에 약지가 검지보다 긴 남성이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연구 내용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18~34세 여성 80명에게 젊은 남성 49명 사진을 보여준 후 매력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들이 선호한 매력남들에게는 약지가 검지보다 긴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의 한 비뇨기과 의사는 약지가 검지보다 긴 남성은 음경도 상대적으로 긴 현상을 확인했다. 캐나다 컨커디아 대학 연구팀, 영국 사우스햄턴 대학 존매닝 박사 등의 조사에 의하면 약지가 긴 남성이 적극적이고, 운동능력이나 환경적응에 뛰어났다. 반면 여성은 손가락 길이와 별다른 연관성이 없었다.
이 같은 연구 결과 및 조사들은 태중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영향과 남성적 신체 발달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노준 조선대병원 비뇨기과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손가락 길이와 정액의 질은 상관성이 없었다. 각 연구를 종합하면 손가락 길이와 탈모, 나아가 성적 능력 관계는 개연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손가락 연구는 단순 비율과 단편적인 통계에 의한 것이다. 특히 탈모는 원인도 다양하고 체질과 성향 등 유전과 함께 후천적 영향도 대단히 크다. 모발의 진실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감춰져 있다. 때문에 손가락과 탈모 연관성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 또한 참고하는 정도가 좋을 것이다.
/황정욱 모제림성형외과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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