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해 여름 다수의 사상자를 낸 '신림역 흉기난동'과 '서현역 흉기난동'이 연달아 일어난 뒤로 유사한 범죄를 예고하는 글이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살인예고글'뿐만 아니라 유명인을 대상으로 협박하는 유형의 글도 끊이지 않으면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상황이다. 정작 붙잡혀 재판에 넘겨진 이들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 가운데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북경찰서는 "장애인 시설에 사제 총기로 테러하겠다"는 글을 올린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게시글 작성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신림역 사건 이후인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살인·테러 예고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 298명을 검거하고, 이 중 28명을 구속했지만, 다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구체적으로 유명인을 타겟으로 한 협박글이 등장하고 있다. 252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이자 만화가인 침착맨(본명 이병건), 축구선수 손흥민·황희찬, 정치인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협박글들이 범람하자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가족들이 지방에 있는 탓에 서울역을 자주 오간다는 직장인 김모씨(36)는 "흉기난동 사건 이후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갈 때마다 불안하다"며 "지난 5월 서울역 테러 예고 게시글이 올라왔을 때는 기차표를 취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불필요한 공권력 낭비도 일어난다. 당시 서울역에서 칼부림을 하겠다는 예고글이 올라오자 사흘동안 경찰관과 교통공사 직원 50명이 배치되기도 했다. 이들을 잡기 위한 수사력 낭비는 물론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잡아보니 10대라 처벌이 어렵거나, 실제 의도가 없는 '장난'이었다고 변명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살인예고글을 작성한 이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것이 온라인상 살인 협박이 지속되는 이유로 꼽힌다. 당초 수사기관은 살인예고글이 쏟아질 당시 '살인예비죄' 적용까지 검토한다고 했지만, 대부분 협박이나 공무집행방해 혐의 적용에 그쳤다. 관련법에 따르면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반면 살인예비죄는 10년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은 "살인예비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살인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온라인상에서 글을 적는 행위로는 법 적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7월 대림역에서 흉기 살인을 예고하는 글을 올려 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은 1심 법원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으며, 같은달 신림역 칼부림 사건 직후 살인 예고글을 올린 20대는 특수협박죄가 적용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에 지난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협박죄를 엄하게 처벌하는 공중협박죄 신설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21대 국회 문턱을 넘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의 정비를 넘어 살인예고글이 등장하는 사회적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살인예고글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은 양극단으로 갈라진 사회에 불만이 많아지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로 봐야 한다"며 "공중협박죄 신설 등 법률적인 대비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잠복된 범죄 가능성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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