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할 때는 모른다. 아파 봐야 내 몸의 소중함을 안다. 아프니까 환자권리장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로 마무리되는 문장을 보면서 의사 파업에 대한 화를 진정하기가 힘들어졌다. 환자권리장전은 개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휴지조각 보듯이 하는데. 그러면서 오늘 나는 어쩌다가 병원에 오게 됐지 하며 내 몸의 이력을 돌아보게 된다.
오늘 병원에 오게 된 사연은 낙상으로 꼬리뼈에 심한 통증이 와서다. 온 김에 무릎도 살펴봤는데 관절염 2기라고 한다. 특별히 치료할 방법은 없다고 하자 힘이 빠진다. 자신감이 사라진다. 그러면서 결국 내 몸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무릎 권리장전'을 써봤다.
제1조 무릎은 신체의 일부로서 머리, 목, 팔, 허리, 심장, 간장, 허파 등 다른 지체 및 장기들과 대등하게 대접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제2조 무릎은 차별을 받고 있다. 많은 인간은 얼굴 가꾸기에 많은 돈을 소비한다. 온갖 운동을 열심히 한다. 무릎은 맨 나중에 돌본다. 정형외과 간판을 봐도 허리디스크, 목디스크가 앞자리에 크게 쓰여 있다. 유명한 의사도 '백년허리' '백년목'을 집필한 후에야 '백년무릎'을 썼다. 발바닥은 제2의 심장으로 대우받는다. 요즘은 맨발이 땅과 맞닿을 수 있는 접지권을 주장한다. 신체 구조상 무릎 밑에 발이 있는데, 발이 상전이 되어 버렸다. 발을 소중히 하는 것을 탓하지 않는다. 무릎의, 무릎에 의한, 무릎을 위한 정도는 아니어도 무릎도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제3조 무릎은 인간의 시작이자 자존심이다. 누구나 부모의 무릎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그래서 무릎 슬(膝), 아래 하(下), 슬하라는 표현을 쓴다. 무릎에 누워서 말을 배우고 정을 익힌다. 사람이 무릎은 꿇는다는 것은 패배·복종을 의미한다. 무릎은 내 인생의 시작이요, 자존감의 끝이다. 그 정도로 소중하다.
제4조 노인이 되어서야, 슬개골이 망가지고 물이 차고 십자인대가 파열되어서야 무릎의 소중함을 안다. 무릎에 이상이 생겨 걷기가 힘들고 산을 오르내리지 못해 봐라. 지하철에서 힘들게 간신히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의 절망 가득한 표정을 봐라.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든다. 걸을 수 없으면 사람이 무너진다. 세상과 단절이다. 무릎이 안 좋으면 보행과 이동의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제5조 무릎은 온몸의 체중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인간은 늘 혀의 간사함에 빠져 먹고 마시고 체중 관리를 소홀히 한다. 당신이 10㎏, 20㎏을 들고 다녀 봐라. 얼마나 무거운지. 무릎은 혼자서 묵묵히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이 무릎에게 무릎의 권리가 있다. 노인이 되어서야 무릎의 소중함을 깨달은들 소용이 없다. 젊었을 때부터 친구로 삼아야 무릎도 인생도 행복하다.
무릎의 권리장전을 쓰고 나니 뿌듯하다. 고생한 무릎에게 훈장이라도 수여한 것 같은 느낌! 나중에 무릎이 "권리장전은 개뿔, 니가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사람마다 아픈 부위가 다르다. 적신호가 어디서부터 오는가는 그 사람의 삶의 이력이다. 그럴 때 나를 위해서 고생한 몸의 한 부분을 향해 권리장전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인생의 7할을 넘게 걸어왔고 앞으로의 삶이 3할도 채 안 남은 지금…내 남은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이해인 '생의 목표')
민병두 보험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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