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타인의 자유는 곧 내 자유"... '아시아 초연' 이란 연극 ‘블라인드 러너’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7.19 10:32

수정 2024.07.19 17:28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파이낸셜뉴스] “'블라인드 러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남녀의 위기를 다룬다. 처음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왜 당신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우리의 관계, 삶, 목숨이 위태로워져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따진다. 그러다가 여성(타인), 나아가 사회 전체의 자유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싸워야만이 나 자신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진화, 발전한다. 이것이 제가 추구한 이 연극의 핵심이다.

2022년 이란 히잡 시위(마흐사 아미니 시위)와 유럽 난민 문제를 소재로 한 이란 출신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아미르 레자 쿠헤스타니의 최신작 ‘블라인드 러너’가 세종문화회관의 컨템퍼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 24(Sync Next 24)'의 해외초청작으로 오는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블라인드 러너’는 반정부 시위로 감옥에 갇힌 아내와 면회하러 온 남편의 대화로 작품이 시작된다. 남편은 아내의 권유로 시각장애인 여성과 함께 프랑스 파리의 달리기 대회에 출전한다.

‘유리잔 위에서 춤추다(Dance on Glasses)’(2001)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아미르 레자 쿠헤스타니는 ‘타임로스’ ‘청각’ 써머리스‘ 등 시간과 기억에 관한 3부작를 통해 작품세계를 견고히 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실화를 바탕으로 텍스트 중심의 서사를 가지며, 간결한 무대에서 카메라를 통해 무대 위 실황이 스크린에 투영되는 특유의 연출방식으로 유명하다.

’블라인드 러너‘는 쿠헤스타니가 이끄는 메르 시어터 그룹이 2023년 선보인 신작으로, 2023년 5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축제’로 명성을 얻고 있는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에서 초연됐다.

이 작품은 2022년 9월, 이른바 ‘히잡 시위’라 불리우는 ‘마흐사 아미니 시위’의 시발점이 됐던 그의 사망사건을 다룬 기자 닐루파 하메디와 남편의 실화를 모티프로 창작됐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게 체포된 후 의문사한 22세 쿠르드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기폭제가 되어 이란 전역으로 확산된 시위이다.

작품은 또한 영국-프랑스 해저 터널(Channel Tunnel)을 소재로 하여 유럽으로 집단 망명을 시도하는 이민자 행렬에 주목한다. 쿠헤스타니는 앞서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 그리고 유럽 이민자들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작품 감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화 요소 있으나 전기 연극은 아냐"

쿠헤스타니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대본의 전체 구성이 완성된 뒤 히잡 시위가 발발했다. 하메디의 실화에서 가져온 것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 연극이 그 사람의 전기는 아니다. 하메디를 직접 만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극의 주제와 해당 사건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자연스레 연결돼 있다고 보는게 맞다. 여성 배우가 아내와 시각장애인 러너 역할을 1인 2역으로 맡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하메디가 히잡 시위에 대해 다루면서 여러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 하나의 뜻을 가진 그룹이 됐고 사회운동으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1인 2역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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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난민 문제를 피부로 느끼는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 초연으로 한국에서 처음 공연하게 됐다. 그는 "난민 문제는 난민 자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난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도록 한 모든 국가 체제의 책임"이라며 "난민을 만드는 나라가 자신의 조국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 모두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러너’는 페르시아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20일 공연 종료 후에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구기연 교수와 튀르키예 출신 언론인이자 방송인인 알파고 시나씨가 작품 속 중동, 유럽의 현안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강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오는 21일까지 공연 시간은 60분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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