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경쟁 존재했다고 보기 어려워"…1심 벌금형→2심 무죄
[파이낸셜뉴스] 국가예방접종사업(NIP)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약·유통사들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벌금형을 선고했던 1심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이창형·남기정·유제민 부장판사)는 23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전 SK디스커버리 소속 팀장 이모씨 등 제약업체 관계자 7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양벌규정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SK디스커버리·보령바이오파마·녹십자·유한양행·광동제약·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제약·유통사에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려면 제조사로부터 공급확약서를 발급받아야 했는데, 사실상 공동 판매사만 발급받을 수 있었다"며 "이러한 구조적 특수성으로 인해 공동 판매사와 다른 업체 간 실질적인 경쟁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들러리를 내세워 입찰에 참여했다고 해도 공정한 자유 경쟁을 통한 적절한 가격 형성에 부당한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백신공급 방식이 변경된 이후 제조사들이 제3의 업체에 공급확약서를 발급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6년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정부가 연간 백신 전체 물량을 구매하는 정부총량구매방식으로 조달 방식을 변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단독입찰을 경쟁입찰인 것처럼 가장했다면 입찰의 공정을 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는 실질적인 경쟁관계가 존재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과 사실관계를 달리한다"며 "애초에 공정한 자율 경쟁을 통한 가격 형성이 어려운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각 백신 입찰에서 제조사가 공동 판매사가 아닌 제3의 업체에 공급 확약서를 발급해 줄 실질적인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들러리를 내세우지 않았고, 참여했더라도 제3의 업체가 최종 낙찰자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가 발주한 자궁경부암 백신 등의 입찰에 참여하면서 들러리 업체를 세우는 수법으로 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이들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 녹십자 등 제약사 6곳에 3000만~7000만원의 벌금을, 이들 회사 전현직 임직원 7명에게 벌금 300만~5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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