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인스타에 있는 내 친구 '샤넬백', 나도 사고 싶은데…" [쓸만한 이슈]

김주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7.29 06:40

수정 2024.07.29 06:40

분초사회가 낳은 시성비, 디토(Ditto) 소비
"돈만큼 시간도 중요.. '검증된 소비' 할래요"
'남과 다른 나' 추구하는 욕구가 모방소비로
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형들, SNS하는 여자는 '믿거(믿고 거른다)' 맞지?"

인터넷에 떠도는 남성들의 우스갯소리 중 하나인데요. 결혼상대로 피해야 할 상대 유형은 ‘인스타그램을 과하게 사용하는 여성’이라고 합니다. '허영에 빠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타인이 하는 것을 카피해 사치하는 여자'를 멀리 하라는 비하이자 조롱인데요.

유쾌하지 않지만 요점은 이해합니다. 비단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짓지 않더라도, 본인만의 철학과 소신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누군가를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요.

하지만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쟤가 사니까 나도 살래"라는, 일차원적인 과시와 허영으로 여겨지는 소비 성향이 실물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데요. 오늘은 한 번 쯤 들어보셨을 디토(Ditto) 소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쟤가 샀다, 그러므로 나도 산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를 통해 디토소비, 분초사회, 시성비 등을 2024년의 핵심 키워드로 꼽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 멀리 중동에서 건너와 대한민국 유통가를 흔들고 있는 '두바이 초콜릿'의 시작은 틱톡에 올라 온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마리아 베하라'라는 아랍에미리트의 유명 인플루언서가 초콜릿을 먹는 영상을 올리며 전 세계적으로 입소문이 퍼졌고, 이후 국내 유튜버가 두바이 초콜릿을 직접 만드는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인기몰이가 시작된 건데요.

인플루언서로 인해 흥행에 성공한 건 두바이 초콜릿 뿐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디저트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품절 대란을 일으킨 분홍색 스탠리 텀블러의 인기 시발점은 인플루언서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김난도 교수는 "쟤가 사니까 나도 산다"라는 디토 소비의 기저에는 분초사회를 살아가며 시성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경제 패러다임이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이행했고, 시간은 돈 만큼이나 중요한 자원이 됐습니다. 모두가 분초를 다투며 살면서 '시간 대비 성능'을 따지는 시대가 도래했고요.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정보 탐색, 대안평가 등 제대로 된 구매 의사결정의 시간을 생략한 채 특정 사람·콘텐츠·커머스를 추종해 구매하는 경향을 갖게 됐다는 말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 온 샤넬백과 오마카세 자랑글을 보고 귀신에 홀린 듯 돈을 쓰는 소비자들의 경향이 마침내 무시할 수 없는 경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지요.

"'이부진 가방' 주세요"

디토 소비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까지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예시로 든 두바이 초콜릿의 경우 각 대형 편의점이 관련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는 것은 물론 대형마트와 백화점까지 팝업 스토어를 유치하는 등 발 빠르게 소비자 수요에 대처하고 있는데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의 경우, 지난 12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원베이크팩토리’ 팝업 스토어에 두바이 초콜릿을 구매하기 위한 고객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초콜릿 1개를 1만7000원에 내놨는데 평일에는 개장 후 30분 만에, 주말에는 개장과 동시에 번호표가 마감됐다고 하네요.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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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게 수익을 올린 기업도 있습니다. 생활문화기업 LF는 올 들어 디토 소비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하는데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LF가 수입·판매하는 브랜드 ‘빠투’(PATOU) 제품을 착용해 화제가 된 후 해당 가방의 판매량이 2주 동안 약 1000% 증가했다고 합니다. 재질·사이즈 등 비슷한 상품도 판매량이 올랐는데 이를 포함하면 무려 1600% 폭증했다고 하네요.

디토 소비의 일상화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네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물론 부작용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디토 소비는 본질적으로 모방소비의 성격을 띄었기에 충동소비와 과잉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SNS를 끼고 사는 청소년들에게 끼칠 악영향도 우려 되는데요. '쟤가 사니까 나도 산' 샤넬백을 사지 못한 개인이 갖게 될 상대적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을 테고요.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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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학에서는 소비라는 행위를 '만족을 창출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결합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명품 또는 값비싼 자동차의 가치를 희소성이라고 봤을 때, 이들 상품을 구입하는 이유는 '남과 다른 특별한 나'를 추구하기 위한, 일종의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놓고 본다면 디토 소비, 아이러니하기는 하네요. 어느 세대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요즘 젊은 사람들의 보편적 소비 성향이 '동조 소비'인 셈이니까요.

'극단적 편리'를 추구하는 요즘 세대들이 만드는 다음 트렌드는 어떤 것일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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