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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전쟁영웅, 재일학도의용군 출신 '빨간마후라' 박두원 대위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7.31 09:37

수정 2024.07.31 14:36

대한해협 건너와 용맹하게 싸우다 하늘의 별이 된 파일럿
[파이낸셜뉴스]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박두원 공군 대위.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박두원 공군 대위.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국가보훈부는 ‘2024년 8월의 6·25전쟁영웅’에 전투 출격으로 수많은 전공을 세운 박두원 대한민국 공군 대위(당시 중위)를 선정했다고 7월 31일 밝혔다.

박 대위는 6·25전쟁 당시 재일학도의용군 출신으로 자원입대해 1952년 2월부터 8월까지 총 89회에 출격으로 황해북도 송림시에 위치한 송림제철소 폭격작전 등 전과를 올렸다.

1926년 7월 5일 경북 경주에서 출생한 박 대위는 1934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조국에서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자원입대해 재일학도의용군 제5진의 일원으로 1950년 10월 18일 부산에 도착했고, 국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헌병대에 배속됐다.

하지만 공군에서 조종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그는 대구의 공군본부를 직접 찾아가 입대를 청원했다.
1951년 4월 1일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하여 조종하사관(일등중사) 신분으로 기초 조종 교육을 받았고, 그해 10월 F-51D 전투기로의 기종 전환 교육을 받았다. 이듬해 1952년 2월 1일에 준위로 임관,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 강릉전진부대에 배속돼 2월 3일 첫 전투 출격에 나섰으며 같은 해 3월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우리 공군의 강릉전진부대는 전선의 소강상태를 이용해 전력을 비축하려는 공산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박두원 대위는 F-51D 전투기로 출격해 적 후방 폭격 임무에 나섰다. 특히 1952년 3~4월 진행된 송림제철소 폭격작전은 우리 공군이 처음으로 수행한 적 산업시설에 대한 전략 폭격이었다. 그는 80회가 넘는 출격을 기록하며 강릉전진부대의 가장 왕성한 전투기 조종사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1952년 8월 2일, 89회째 출격한 박 대위는 동부전선의 공산군 주요 보급집결지였던 강원도 간성 일대의 보급품 직접소를 목표로 작전에 돌입했다. 이날 편대는 전봉희 소령을 편대장으로 한 F-51D 전투기 4대로 편성됐다. 강릉전진기지에서 이륙한 그는 강원도 경포대, 주문진을 지나 속초 상공을 지나던 중 갑자기 기체가 폭발해 낙하산 탈출 후 동해바다에 내렸고 주변의 민간 어선들에 의해 구조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전사한 상태였다.
6·25전쟁에 자원한 ‘재일학도의용군’ 중 유일한 공군 조종사였던 박 대위는 F-51D 전투기 조종사로서 전사한 17명 가운데 가장 많은 전투 출격 기록을 보유한 대한민국 창공의 영웅이었다.

정부는 수많은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그에게 대위로의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1952년)을 수여했으며, 그의 유해는 195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2014년에는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본부에 ‘재일학도의용군 위령충혼비’가 건립되어 박 대위를 포함한 135명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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