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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의 경제산책] 독단의 오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01 18:35

수정 2024.08.01 19:20

文 정부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정책 독단의 오류
전문가들 반론 잘 들어야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영국 런던의 국립미술관에는 살바토르 로사라는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화가의 자화상이 있다. 이 그림에는 "더 나은 진실을 말할 수 없으면 침묵하라"라는 라틴어 경구가 같이 그려져 있다. 이 말은 중세 철학자들이 지켜야 할 자세로서 구전되어 왔던 것이라 하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 하겠다.

이러한 경구가 있다는 것은 실제 지식이 많은 지성인이든 많은 업적을 쌓은 학자든 간에 자신의 판단과 학식을 과신하고 틀린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오류의 예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에게서도 가끔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주류 경제학의 대표적 학자인 미국의 폴 새뮤엘슨은 구소련의 국민총생산(GNP) 규모가 미국을 1980년대에 추월한다고 예측했다가 그 예측이 들어맞지 않자 이를 2000년대 초반으로 수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거장인 영국의 조안 로빈슨은 주체사상에 바탕한 북한의 김일성 유일체제야말로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체제라고 찬양한 바 있다. 다만 새뮤엘슨은 소련 체제를 찬양하거나 동경을 한 것이 아니고 통계자료에 근거한 학문적 예측을 한 것인 반면, 로빈슨은 학문적 예측이긴 하나 도덕적 판단이 곁들여진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일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학계에서는 어떠한 주장에 문제점이 있다면 그를 지적하는 반대 주장과 토론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반론 역시 과학적·논리적 근거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그 결과 옳고 그름이 가려지게 된다. 물론 서로 간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각각 타당성이 있는 경우 그 논쟁은 오래 이어질 수밖에 없지만 위에 든 두 예처럼 그 결론이 명확히 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학문적 주장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 결론이 분명히 나는 경우가 많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그 영향은 학계 또는 그 관계자에게만 국한된다.

정작 문제는 정치나 경제정책처럼 우리 모두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지만 분명하지도 않은 사실을 적당히 섞어서 마치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정치인이 많다. 이러한 오도의 영향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모두에게 미치기 때문에 지양돼야 한다.

경제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경제학설이 있고 그에 따른 정책적 처방이 각기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검증된 (주장과 반론에 의해 확립된) 이론에 따라 정책의 시점, 강도를 조절하는 차이가 정책의 실제 효과를 좌우한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의거해서 정책을 펴는 것은 마치 '알지 못하는 것에 침묵을 지키지 않고 발언하는 것'과 같다. 몇 년 전 주장되었던 소득주도성장의 예를 들어보자. 이는 성장이론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차라리 성장보다는 분배에 더 주안점이 있는 정책으로 평가돼야 한다. 또 지난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수요억제만 하면 부동산 가격이 안정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는데, 그 정책 시행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여기서 든 예외에도 이런 경우는 많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명확한 이해를 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반론)을 들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반론을 듣고 잘못된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고, 그렇지 않다면 수정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책의 방향이 잘못된 것도 문제이지만 합리적인 비판이 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고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런 경우 이에 의해 부정적 영향을 받는 우리(국민)가 명확한 판단을 하고 필요하다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일단 수립되고 시행되는 정책을 바꿀 길은 없다.
결국 그 부작용은 다음번 선거에서 표에 의한 수정만이 가능한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알지 못하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만용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야 하고 또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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