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후 작가의 '불이(不二)'전이 오는 21일까지 갤러리 학고재 주최로 부산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 열린다. 이번 작품 전시 주제가 '깨달음'인 만큼 심오한 작품들이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21년 학고재에서 개최된 '혼돈의 밤'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구작 10점과 새롭게 선보이는 평면 및 조각 50여점으로 구성됐다.
그간 길후 작가는 만물의 근원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하는 정신성을 수십년간 탐구해왔다. 고요한 깨달음의 순간을 담은 미륵불의 초상부터 세상의 창조적 에너지를 그려낸 유화, 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조각까지,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다양한 매체와 스타일의 작품을 관통하는 그의 예술적 화두는 '깨달음'에 자리한다.
특히, 불학에 정진한 그는 불교에서 최고의 경지라 일컫는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覺·무상정득각)'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를 우리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나 언어로 진리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길후 작가는 이러한 침묵의 세계를 시각 예술로 표현한다. 2010년대부터 선보인 '현자'와 '사유의 손'에서 길후 작가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인간의 삶에서 포착된 '깨달음'의 순간을 그려냈다.
대표작 '현자'(2022년)는 견성(見性)을 통해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 현자의 모습을 배경과 구분이 모호한 형태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작품 속 두텁게 쌓아 올려진 마티에르는 작품에 조각적 입체감을 더한다. 그의 회화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특성 중 하나다. 현자는 기도하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는 동시에, 높이 솟아오른 산 봉우리의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진리 안에 모두가 일체임을 상기한다"고 길후 작가는 설명했다. 우측 상단의 붉은 색채는 빛이 작열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깨달음을 얻은 현자의 기쁨을 강렬하게 시각화한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대표작인 '사유의 손'(2020년)은 수신(修身)의 요체(要諦)인 정각정행(正覺正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각(正覺)은 바른 자리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길후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바른 자리는 유무가 아니고, 선악도 아니며 시비도 아니다. 생사도 떠나며, 고락도 불허한다"며 "만일 이 바른 자리를 깨닫고 보면 바른 자리가 곧 부처의 마음자리고 동시에 각자의 마음자리임을 알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2020년에 제작된 일필휘지의 붓질로 화면을 채운 '무제(Untitled)'는 마치 퍼포먼스와도 같은 작가의 즉흥적 움직임을 상상케 한다. 작품 속 형상은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라기 보다 에너지로 가득 찬 형태 그 자체로 인식된다.
그는 "구름이 사람의 형상을 띠다가도 바람결에 흩어져 동물이나 식물처럼 보이는 것과 유사한 형상"이라며 "화면은 구상도 추상도 아닌, 나아가 구상일 수도 있고 추상일 수도 있는 모호한 상태를 띤다"고 설명했다.
한편, 길후 작가는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8년 계명대 회화과 졸업 후 1996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SAC 젊은 작가상을 수상해 같은 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포항시립미술관(포항), 송장당대문헌전시관(베이징) 등 국내외 기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2014년에는 베이징 화이트 아트박스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2021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와 2020년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서울), 대구미술관(대구), 소카 아트센터(베이징), 우봉미술관(대구)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1년 제1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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