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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폭염의 경제학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06 18:21

수정 2024.08.06 18:25

김경민 도쿄특파원
김경민 도쿄특파원
매년 여름 일본의 거리는 불볕더위로 불타오른다. 에어컨은 최대 출력으로 돌아가고, 거리의 사람들은 지친 얼굴로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하지만 이런 폭염은 단순한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전력소비의 폭증, 농업 생산의 감소, 관광산업 침체, 건강 문제까지. 폭염의 이면에는 또 다른 경제학이 숨어 있다.

여름철 폭염은 에어컨 사용의 급증을 초래한다. 이는 전력소비량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져 전력망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지난해 여름 일본의 전력소비량은 전년 대비 약 5% 증가했다. 전력회사들은 약 6800억원에 달하는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했고, 곧바로 소비자 전력요금 상승으로 이어졌다.


해마다 전력비용이 증가하자 일본의 많은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스마트그리드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잇따라 도입했다. 스마트그리드는 전력 사용패턴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효율적인 전력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도쿄전력은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활용해 여름철 전력 피크타임 동안 전력소비를 약 10%(약 4100억원) 줄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파나소닉은 '제로 에너지 빌딩'을 목표로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단순히 기업의 운영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폭염은 또 농작물의 생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온과 가뭄은 쌀과 같은 주요 작물의 생산량을 감소시켜 식량 가격을 상승시키는 원인이 된다. 2022년 일본의 쌀 생산량은 약 3% 감소했고 여름 채소 가격도 평균 12% 상승, 농민들의 수익 감소와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스마트 농업 기술과 드론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드론을 이용해 작물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정확한 위치에 물과 영양분을 공급해 작물의 생장환경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도입은 약 2700억원의 농업 손실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여름철 폭염은 관광산업에도 큰 타격을 준다. 지난해 여름 일본의 주요 관광지 방문자 수는 전년 대비 약 10%(약 2500억원 규모) 감소했다. 도쿄와 교토 같은 대도시는 실내 관광 명소와 에어컨이 완비된 쇼핑몰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야외 관광지의 수익이 급감했다. 홋카이도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여름 기후를 활용, '쿨 재팬'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반면 폭염으로 성장하는 관광산업은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분야다. 실제 교토의 역사적인 사원들을 AR 기술을 통해 집에서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도쿄타워는 VR 기술을 활용, 방문객들이 타워의 역사와 구조를 가상으로 탐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열사병 문제도 만만찮다. 일본에서는 2022년 열사병 환자가 20% 증가한 3만명 이상 발생했다. 열사병은 1400억원의 의료비용 증가와 노동력 손실 등 경제적 비용을 초래했다. 일본 정부는 국민에게 폭염 대비 행동요령을 교육하고, 공공장소와 학교에서 열사병 예방 캠페인을 실시하는 등 시민의 인식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도 국민 세금 700억원 정도가 들었다.

이처럼 폭염은 단순한 기후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친 복합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기후적 도전에 대비해 에너지 효율성 향상, 식량안보 강화, 관광산업 다변화 그리고 건강 안전망 구축 등의 종합적인 대응책 마련은 필수다.


이런 대응은 이미 경제적 손실에 대한 방어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도 폭염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날씨를 탓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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