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달러 찍기에 당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의 '탈달러' '달러와의 이혼' 얘기가 언론에 넘쳤지만 2023년 말 기준 세계 외환보유액의 58.4%는 여전히 달러이고, 그 비중은 오히려 커졌다.
거대한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미국의 인공지능(AI)발 주가하락이 아시아를 거치면서 주가폭락으로 이어졌고, 다시 미국의 주가 대폭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소위 '채찍(Bullwhip) 효과'다. 미국의 작은 금융발작 효과가 종착역인 아시아에는 큰 파도로 다가온 것이다. 미국에 수출하고 미국달러금융에 지배당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숙명이다.
지수 추종형 패시브펀드가 주종을 이루는 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올라가는 종목은 계속 살 수밖에 없고, 반대로 하락하면 모두가 파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오르기 시작한 엔비디아 같은 스타종목은 조정 없는 '장대주가'가 나오고, 반대로 누군가 팔기 시작하면 날개 없는 '절벽주가'가 나온다. 여기에 기관들의 일정 수준 이상의 주가하락이 나오면 손실 축소를 위한 로스컷(Loss Cut) 규정과 개인들의 신용거래에서 주가하락에 따른 담보 부족으로 반대매매를 당하는 마진콜(Margin Call)이 가세하면 주가는 자동으로 대폭락이 나온다.
돈의 가격은 금리이고, 미국의 금리인하는 돈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방향타인데 100년 만의 통화증발에 취한 월가는 금리인하를 경기하강이 아닌 유동성 증가 시그널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다가 당한 것이다. 월가의 나무는 하늘까지 자라지 않는다. 마진율 75%대를 자랑하는 엔비디아 주가는 단기 정점을 보인 게 맞다. 그러나 돈의 바다가 울부짖으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는 일정 시간 지나면 다시 잠잠해진다.
세계 경제의 역사는 신기술과 돈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만들어진다. 버블은 세상에 없던 신기술이 채운다. 100년 만의 버블을 채울 기술은 AI다. AI는 미중이 AI 전쟁을 할 만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AI의 인프라인 반도체 역시 제2, 제3의 엔비디아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성장산업이다. 단기수익률에 목매는 금융가의 AI와 반도체의 버블론, 비관론에 너무 깊이 빠질 필요는 없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역사책을 펴보라고 한다. 지금 블랙먼데이도 처음이 아니다. 코로나 때 세계 최고의 의료선진국 미국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지만 미국은 제풀에 스러진 코로나를 핑계로 100년 만에 가장 많은 돈을 풀었다. 서학개미들은 국장을 버리고 미국에서 벌었다고 하지만 실력이 아니라 '달러의 밀물이 들어올 때' 거기에 서 있었을 뿐이다.
초고마진의 엔비디아 칩도 경쟁자가 나와 시장을 안정시키고 그러면 낮아진 투자원가로 AI산업은 손익분기점을 앞당길 수 있고 다시 날개를 달 수 있다.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는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들었고, 이번 미국 주가 대폭락의 단초를 제공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MIT 졸업식 축사에서 성공하려면 "고통에 꺾이지 않고 회복력을 쌓는 게 중요하다. 회복력은 기대치를 낮추는 데서 온다"고 자신의 성공비결을 공개했다.
증시에선 영원한 성장산업도 사양산업도 없다. 오로지 투자자의 현명한 선택만 있을 뿐이다. 지난 3년의 대박의 꿈에서 이젠 기대치를 낮추고 새로운 청바지 장사 제2, 제3의 엔비디아를 찾고 기다리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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