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유럽아시아연구소 등 국제 연구진이 세계 56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중 정서가 가장 높은 나라로 우리나라가 꼽혔다. 중국에 대해 ‘부정적’ 혹은 ‘매우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81%를 차지했는데, 72%로 2위인 스위스나 69%로 3위인 일본과 비교해도 꽤나 높은 수준이다.
2015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할 당시 한국의 반중 정서는 고작 32%였으니, 근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격하게 치솟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반중’이라기보다 ‘혐중’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인식은 악화일로다.
이제 중국은 한국과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달갑지 않은 타이틀을 일본과 공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정서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나라와 멀어진 요즘이다. 중국에 대한 혐오가 일상이 되어 버린 이즈음, 중국 문화를 사랑하는 제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이나마 오해를 풀고 싶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물론 동북공정처럼 일말의 재고 없이 비판받아 마땅한 잘못도 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고 행간의 의미를 해석하면 오해가 풀릴 만한 사안도 더러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우리나라 혹은 중국과 세계 각국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냉전시대로 회귀한 듯 날선 혐중 정서가 조금은 누그러들지 않을까.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들춰보면, 전면적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문제적 인물이 일으킨 문제적 사건의 속살을 톺아보는 작업이야말로 서로 간에 쌓인 앙금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하여 중국사 가운데, 과연 어떤 시대를 선택해 집중해서 보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여러 고민이 스쳐 지나갔지만, 중국 자국사가 대부분인 이 시기보다는 원나라 이후 세계 각국과 활발하게 교섭하는 중국의 민낯이야말로 퇴행적 한중 관계를 되살리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톺아보려면 동아시아사 전체의 맥락을 읽어 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급변하는 세계정세 흐름 속에서 좌충우돌 하는 중국의 모습을 살펴봐야만 한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1882년 6월 9일, 흙먼지를 날리며 돈화문을 밀어젖히고 경복궁에 진입한 군인들은 밀린 봉급을 달라고 무력시위를 했다. 임오군란이다. 조선은 사실상 임오군란을 기점으로 망국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는다.
문제적 사건 임오군란을 분석할 때, 병사들의 처우를 둘러싼 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의 갈등에만 초점을 맞춰 그저 흥선대원군과 고종 간에 벌어진 헤게모니 다툼 정도로 해석한다면 행간의 숨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임오군란으로 인해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조선 땅에 주둔하게 되었다. 불평등조약이 낳은 비극적 결말이다.
당시 청나라 군대의 무력을 앞세워 조선의 내정 간섭을 시도한 인물인 위안스카이는 조선과 청나라를 동시에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한 문제적 인물이다. 임오군란의 역사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려면 위안스카이의 행적을 돌아봐야 하고, 그가 황제를 참칭하다 결국 청나라를 서구 열강에게 헌납한 과정까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임오군란의 세계사적 맥락을 정확히 읽어 낼 수 있고, 개별적 사건 사이의 행간을 오롯이 채워 넣을 수 있다.
우리의 시야는 동양과 서양으로 세계를 양분하곤 하지만, 실상 어디서부터가 동양이고, 어디서부터가 서양인지 구분하기 난망하다. 세계 각국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다양한 사건과 상황으로 얽히며 복잡다단한 역사의 연대표를 직조해내고 있다. 그러니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넓은 시야로 바라봐야 역사적 사건의 행간을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있다.
19세기 이후, 강대국들의 강력한 자장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격동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우리 민족이다. 그 지정학적 리스크를 면밀히 고려해보노라면, 이웃 국가들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끌어올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증폭된다.
미중 패권 전쟁의 와중에 미국에 엎어질 수도 없고, 중국의 ‘깐부’가 되기도 거북한 우리의 외교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을 둘러싼 문제적 장면들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자, 지금부터 중국사의 문제적 장면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김훈종 SBS PD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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