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골든타임이 끝나기 전에

김동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8.08 18:09

수정 2024.08.08 18:09

김동찬 금융부 기자
김동찬 금융부 기자
"얼마 전에 한국은행에서 나온 보고서에서도 보면…."

"한국은행 이슈노트 보셨나요? 그 내용에 따르면…."

몇 주 전 수습기자를 뽑는 면접에 참석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토론 주제로 선정됐다. 흥미로웠던 건 대다수 지원자가 하나같이 한국은행이 지난 3월 초에 발간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보고서를 인용했다는 것. 통화정책에 관한 주제가 아니었음에도 2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에서 한국은행이 수차례 언급됐다.

한국은행의 일침은 지난해부터 현재진행형이다. 김포시 서울 편입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해 11월 한은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펴내며 '메가 서울'에 반대했다.
한 달 뒤에는 초저출산·초고령화가 이어질 경우 국내 경제성장률이 0% 이하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여름에는 국내 혁신기업의 생산성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을 꼬집으면서 한국판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짚었다.

백미는 '국내 물가 수준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다. 한은은 지난 6월 해당 보고서를 통해 "낮은 수입 비중으로 인해 국내 농식품 물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라며 사과 등 수입금지 품목을 개방해 가격안정화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자료를 보면 국내 농식품 물가가 OECD 중간 수준이라고 반박했으나 한은은 또다시 추가 반박자료를 내면서 기존 입장을 공고히했다. 현안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붙여진 '한은사(韓銀寺)'라는 별칭은 이제 옛말이 됐다.

물가안정을 위한 조직인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이어가는 데에는 국내 경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이창용 총재는 취임 후 수차례 "높게 따먹을 과실을 수확하려면 어려움이 수반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만 뻗어도 먹을 수 있던 과실에 안주하는 동안 저출생·소득불평등·지역불균형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누증됐다는 경고다.

분주한 한은과 달리 국회는 멈춰 섰다. 개원한 지 두 달이 흘렀지만 여야는 민생법안을 한 건도 합의처리하지 못했다. 구조개혁은 차치하고 지난 21대 국회는 한은의 독립성과 감독권을 확보하는 한은법 개정안 27건 중 단 한 건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시끄러워진 한은의 지적이 소음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국회가 한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최근 만난 한은 직원은 "오죽하면 한국은행이 이런 보고서들을 내겠느냐"고 토로했다.
골든타임이 끝나기 전에 한은의 직격을 직시해야 한다.

eastcold@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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